Resource : Warhammer 40k 9th Rulebook
사자들 중 한 명은 아직 살아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것만으론 별로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전투는 이미 끝났고, 전쟁이 곧 새롭게 뒤따를 것이었으므로.
그리고 그 안에서, 제라벨도, 그의 군주도 포로들을 만들 필요성을 조금도 느끼고 있지 않았다.
적들에게는 그들을 살려서 고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정보들이 없었다.
-애초에 제라벨은 죽은 적에게서조차 자신이 알아야 할 정보를 캐낼 수 있었다.
때로는, 그 편이 더 쉽기도 했다.
싸이킥 발톱들을 고뇌하는 영혼의 시체에 박아넣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가 원하는 것을 꺼내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의 형제들 다수는 각자 자신만의 잔인성을 만끽하고 있었다.
일부는 전쟁의 열기 속에서 내면의 잔인함을 풀기도 했고,
일부는 전투가 끝나고 다음 전투가 찾아오기 전까지의 그 고요한 시간에 그것들을 해소하기도 했다.
일부에게는 뭐 카타르시스와 비슷하기도 했고,
일부에게는 기괴한 탐닉이자 방종의 해소이기도 했다.
제라벨은 그러한 욕망들 중 어느 하나도 별로 느끼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다.
'마주하지 않은 진실은 거짓만큼 좋은 법이야', 피속에 흐르는 괴물이 속삭였다.
그러나 그는 내면 속 짐승의 중얼거림을 잠재웠다. 놈에게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았다.
대신 그는 저기 시체 더미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전사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는 사그라들어가는 무거운 기도문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죽어가는 사나이가 내뱉는 저주 같은 단순한 건 아니었다.
그러한 것들은 쉽사리 잊혀지기 마련이니까.
수 세기에 걸친 유혈과 전투 덕에, 자라벨의 고조된 감각들 아래 들려오는 그러한 것들은
ㅡ사실상 허겁지겁 달리는 쥐들의 발걸음 소리 혹은 벌레 해충들의 날개 비비는 작은 노랫-소리들만큼이나 하찮게 들려왔다.
무시해도 그만이고. 금방 잊혀지는 그런 것들. 삶의 백그라운드 사운드랄까.
대신 이 소리들은 무언가 좀 더 가치있었다.
그것들은 한 전사의 청원들이었다.
자신의 망가진 신체가 조금 더 힘을 내기를 원하는 소리.
한 번의 기회를 더 원하는 탄원. 계속 싸울 수 있게 힘을 달라는 애원.
참 즐거웠다. 이러한 즐거움은 희귀하고 귀해서 귀기울일 가치가 충분했다.
자라벨은 소리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전투 이후의 전장은 사실 완전히 조용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착용자가 생기 잃은 고깃덩어리로 변한 후에도, 파열된 갑주는 여전히 웅웅거리고 있었다.
적들의 피는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심장들은 멎었어도,
승리한 약탈자들이 쌓인 고깃덩어리 무더기들 주변을 걷는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찬 공기 속에서 냉각되는 무기들이 치이익거리며 연기를 내는 소리도 있었고,
마치 지친 진슴들처럼 꿀꿀거리는 전차 엔진들이 공전되는 소리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전투는 금방 사라지지 않는 메아리들을 남기는 법이다.
죽은 랜드 레이더들은 축 처져, 사실상 매연 피어내는 잔해들에 불과했다.
세라밋 전투 판갑 슈트들은, 승자들의 검은 갑주든 패자들의 적색 갑주든 상관없이,
거리들 곳곳에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었다.
이 전쟁은 승리자인 '군단' 측 또한 치명적인 대가를 치루게 만들었다.
아바돈이 썩 즐거워하진 않겠어, 제라벨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름, 속으로 조용히 읊조린 그 이름만으로도
피 속의 짐승이 동요했다.
이 메아리들의 코러스 속 어딘가에서, 제라벨은 망가진 호흡기가 만들어내는 너덜너덜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사자들 주변을 지나, 검게 그슬린 바리케이트 덩어리들을 통과하여
락크리트 로드에 널부러진, 재로 범벅된 신성한 건물들의 파편들을 넘어 소리 쪽으로 걸어갔다.
소리를 찾아가는 동안, 그는 그의 발걸음 아래 갈려나가는 귀한 세라밋 조각들 박살나는 것에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나중에 난자당한 적 스페이스 마린 시체에서 갑주판을 뜯어내어 그것으로 자신의 전투 갑주가 받은 파손을 보강할 생각이었다.
나중에, 이 전쟁 전리품들은 이 사자들에게서 떨어져 나가 산 자들을 위해 쓰일 것이다.
뭐 그건 나중의 일이다. 지금은, 사냥에 집중하자.
그가 움직이는 동안, 그의 혈관 속에 살아가는 생명체는 전율하며,
각성할 생각에 몸부림쳤다.
잠들어라, 그는 짐승에게 말했다.
놈은 말 없이, 나태하게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직관으로 이를 인식했다.
마침내 발견한 생존자는 간신히 자신의 '명칭'을 유지할 수 있는 꼬라지였다.
그는 아작난 아머와 박살난 육신에 불과했고,
다만 스스로 이미 죽었음을 인정하기에는 너무 고집스러운 불쌍한 영혼의 박살난 잔해에 불과했다.
아름답게 분열된 하늘과 마주보고 있는 전사의 견갑에는,
제라벨이 오늘 쓰러트린 무리의 상징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빛나는, 루비 크리스탈 핏방울에 타오르는 아이보리색 날개들이 새겨진 상징이었는데,
하늘에서 빛나는 냉정한 별들 아래 지금은 박살나 있었다.
그 상징은 이 죽어가는 전사가 한때 유구한 역사를 지닌 위대한 군단의 군기 아래 싸우는,
희석된-피의 잔재들에 속한 자식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제 실패한 유전자-애비마냥 똑같이 죽는 또다른 하급 전사들 무리에 불과한 것이다.
제라벨은 그 상징을 잘 알고 있었다.
전장에서 그것들을 부셔봤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이전 시대에, 이전 전장에서 자신이 입었던 것이었으니까.
그는 이를 갈며 애를 쓰는 사자에게 끼어들었다.
한때 자라벨의 왼팔이였던, 발톱 달린 흉물이 생존자의 목을 감싸쥐며
전사의 기도문 음성을 틀어막았다.
신음과 함께, 그가 다른 사자의 흉갑을 쥐며 버티자,
제라벨은 시체 더미에서 그대로 죽어가는 전사를 끌어내렸다.
그의 난도질당한 갑주에서 스파크들이 튀었다.
'반갑군,' 제라벨이 말했다, '피'흘리는' 천사여.'
제라벨의 말투는 기이하리만치 고풍적이었다.
-그것은 바알 행성의 방언 중 하나로, 4백년 전을 끝으로 지금은 쓰이지 않는 언어였다.
그러나 언어의 기본 뿌리들 자체는 오늘날 바알의 후손들이 사용하는 파생어들 속에 잔재되어 있었고,
그렇기에 부상당한 전사의 두 눈이 화들짝 놀라는 것이 보였다.
1만년 전에 사용되었던 어휘임에도 불구하고,
승리자가 말하는 단어들은 죽어가는 전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장막 너머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아나?' 제라벨이 고대 방언으로 물었다.
'그 공허 속에 어떤 존재가 도사리고 있으며,
어떤 존재가 자신의 광기에 취해서, 너와 같은 신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지 아느냐?'
블러드 엔젤은 가치 없는 증오 속에 송곳니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라벨은 그것을 그대로 따라하며 쉬이익 소리를 내었지만,
대신 그의 창백한 두 눈에는 비웃음이 차 있었다.
증오는 그저 무가치한 것이었다.
'날 보아라,' 자라벨이 죽어가는 천사에게 명령했다.
'날 보란 말이다.'
두 눈이 서로 마주쳤다.
이 두 천사 형제들은 서로 갈라진 1만년간의 충성심 아래 서로 떨어져 있었다.
한명은 전투 흔적으로-가득한 흑과 황금의 갑주를 입고 있었고,
한 명은 난자당한 적색 갑주를 입고 있었다.
둘 다 젊어보였으나, 한 명은 먼 고대의 불로의 존재였고,
한 명은 그저 어리고 죽어가는 자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라벨은 그 천사의 피로 얼룩진 두 눈의 보석들 속에서, 작은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무언가 진짜 존재하는, 피로 이어지는 유대의 증거를.
'반역자 놈,' 블러드 엔젤이 끓는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배반자 놈.'
그러나 그건 다른 놈들도 항상 떠드는 것에 불과했다.
이전 삶에서, 제라벨은 그 단어를 매우 부끄럽게 여겼다.
단지 수치심 때문만이 아니라, 분노와 혐오 때문이었다.
그 단어를 사용하는 형제들이, 자신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들을 변하게 만드는 법이다.
그는 이제는 더 이상 형제들의 수호자들이 아니었다.
영원한 착각에 계몽을 주는 것은 더 이상 그의 임무가 아니었다.
내면의 악마는 깨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제라벨은 그것에 저항했다.
이것은 내가 죽일 것이다, 그는 깨어나려는 존재에게 경고했다.
그리고는 발톱을 조이기 시작했다.
이미 파열된, 세라밋 장갑판이 망가지며 더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블러드 엔젤은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넌 누구냐?' 죽어가는 숨결과 함께, 죽어가는 블러드 엔젤이 물었다.
잠시 동안, 심장 박동 하나 흘러가는 순간 동안, 제라벨의 손아귀가 느슨해졌다.
허나 다음 순간 그는 발톱 달린 손가락들을 더 죄며,
죽어가는 전사를 떨구지 않고 붙잡아 두었다.
송곳니들이 스치며, 에나멜과 에나멜이 마찰했다.
그는 천사의 찢겨나간 외형을 통해 무언가 승리감,
적에게 불쾌한 부조화의 순간을 선사하며, 무언가 음울한 승리감 같은 것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에게 그런 것들은 없었고, 다만 동정심만이 있을 뿐이었다.
피를 흘리는 패자의 고뇌하는 육신의 두 눈에는 다만 반항과 인내의 연민 뿐이었다.
나는 세라펠이었다, 자라벨이 떠올렸다.
이것은 그만의 생각이었다. 그의 피와 영혼 속에 기거하는 생명체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한 명의 피의 천사였다. 진홍-갑주와 백색-날개를 입었던.
'나는 세라펠이었다,' 자라벨이 고통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만! 심장에 숨은 생명체가 반항했다.
천사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숨이 멎어 있었다.
심장은 멈춰져 있었고, 생기는 두 눈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다만 두 눈만이 무언의 감정 속에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죽은 형제의 생애 마지막 행동은 타락한 형제를 동정하는 것이었다.
일어나라, 자라벨은 내면의 악마를 자극했다.
그는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았다.
놈을 놓아주는 것은 곧 해방이고, 구원이자 아드레날린의 폭주였다.
일어나라, 일어나.
짐승이 마침내 풀려났다.
세포와 육신과 혈관과 금육이 서로 융합되기 시작했다.
세라밋이 갈라지고 왜곡되었다.
죄악들의 구현, 영혼의 범죄들이 자라벨의 갑주를 타고 꿈틀댔다.
: 증오와 수치가 돌출되어 튀어나오고,
저주받은 강철과 생체금속화된 뼈로 이루어진 고통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이제 난 자라벨이다,' 빙의된 전사가 두 개의 음성으로 말했다.
그는 숨 멎은 천사의 얼굴을 내려보며,
그의 마지막 삶의 명멸을 떠올렸다.
'나는 계몽의 반대편에서 널 기다리는 존재다.'
그는 잡아당겼다. 그는 찢어발겼다. 그는 젖은, 육체 쓰레기를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발톱들 끝에 묻은 젖은 살점의 냄새를 음미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가 만들어낸 도살자의 광경을 구경했다.
한때 천사였던 것은, 이제 쓰레기이자 도축된 고깃덩어리, 실패작이 되어 있었다.
'나는 신들이 네 기도들에 귀를 대답했을 때 탄생하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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