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ource : Warhammer 40k 9th Rulebook
고요함. 무장실 안에서는 한동안 고요함이 머물렀다.
전사의 귀에는 피의 맥박 소리만이 느리게 들릴 뿐이었다.
죽은 자들의 피. 그의 숨결 끝에 향내, 윤활유, 정전기의 감각이 느껴졌다.
두 눈을 감은 그의 세계는 고요했다. 평화로웠다.
그러나 결코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곧 끝나리라.
그러나 그는 기다렸다.
그의 주변으로, 시종들이 서 있었다.
각자 장갑판들을 짊어진 시종들은 그 무게 때문에 몸을 숙이고 있었다.
해골-얼굴의 케루빔들은 가짜 날개들로 날아다니며,
그의 맹세들과 업적들이 적힌 두루마리들을 쥐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전사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입을 엶으로써 의식을 시작할 것이었다.
그러나 전사는 아직 입을 열지 않았다.
방 안의 모든 인간 시종들은 이대로 시간이 흘러갈 것임을 알고 있었고,
다른 자들 또한 이 고요를 깨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 그의 정신은 이미 저 어딘가, 저 멀리 함선의 함교를 지나 그 너머에 서 있었다.
우주의 차가운 함흑이 대기의 피부 사이로 스쳐 지나갔고,
그대로 대기층의 매연과 구름층을 뚫고 내려가, 전란의 화염에 뒤덮힌 행성에 서 있엇다.
전사는 자신이 흡수한 전술 뎅터를 통해 행성이 흘리고 있는 유혈을 느낄 수 있었고,
터져나가는 시체들과 모성의 폐허 위에 쓰러지는 자들의 전사율까지 볼 수 있었다.
심지어는 그들의 손 아래 떨려오는, 생존자들의 군기들까지 느낄 수 있었다.
죽은 자들의 영혼들, 죽어가는 자들, 생명과 살아 있는 자들.
전쟁들이 터지는 우주의 모든 다른 장소들에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여기에도 있음을ㅡ
전사는 전투의 삶 속에서 이미 깨닫고 있었다.
대기권에서의 투하... 드랍 포드가 하늘을 가르며 불길에 휩싸이자,
돌파 가속 압력, 관성이 그의 몸을 타고 흘렀고,
형제들의 음성이 기도문과 함께 올라가는 것이 들려왔다.
지면 충돌. 그리고 전개. 문들이 내부 폭발하며 마치 강철 꽃잎의 잎사귀들마냥 펼쳐졌고,
곧 총알들이 쏟아지며 마치 비처럼 세라밋 장갑판 위로 튕겨졌다.
그의 두번째 심장이 마침내 세차게 뛰며, 피가 혈관을 타고 근육에 골고루 퍼지기 시작했다.
죽은 자들의 심장들... 죽은 자들의 피...
위협 및 목표물을 상징화한 룬들이 헬멧 디스플레이 화면을 통해 전개되어 바쁘게 회전하고 있었다.
탄알들은 그의 총구 끝을 지나 발사될 때마다, 적들의 신체가 폭발했다.
그는 형제들과 함께 전장을 향해 돌진한다. 한 마디의 말도 필요 없었다.
지시조차 없이, 전사들의 정확한 움직임들은 마치 하나로 빚어진 것만 같았고,
사고와 직관 또한 통일되어 있었다.
금속 칼날이 허공에 적들의 피를 뿌리고 고기를 갈아내었으며,
적의 고기와 뼈에 박힌 체인소드를 꺼내기 위해 시체를 발로 차자
자랑스러운 푸른 색 갑주 위로 붉은 얼룩이 튀었다.
모든 것이 그리 될 것이다. 반드시 그리 될 것이었다.
그 순간 그는 떠올렸다.
그는 과거를 떠올렸다. 두 명의 어린아이들이 청색 하늘 아래, 절벽의 벼랑을 가로질러 뛰고 있었다.
그들은 쌍둥이였다. 그 둘의 영혼은 동일했다.
땀이 그들 아래 흘러내렸고, 입에서는 숨이 거칠게 흘러나왔다.
벼랑 끝이 그들의 발치 아래서 입을 벌리고 있자,
그들은 걸음을 멈추고 절벽면 아래 펼쳐진 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들 뒤편으로 포식자 짐승들의 울부짖음이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둘 중 한 명이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
짐승들은 먼지로-메마른 대지와 같은 회색빛이었으며,
가시들과 비늘들, 모피는 목 뒤편의 누런 눈들이 위치한 지점까지 올라와 있었다.
놈들의 분홍 아가리들에는 백색의 송곳니들이 가득했다.
'뛰어야 해!' 그의 형제가 소리지르며 그를 홱 잡아당겼다.
형제는 절벽을 가리켰다. 짐승들이 다가오는 순간, 그는 근육을 타고 흐르는 긴장감을 느꼈다.
그 둘은 뛰어내렸다.
무장실 안에서, 전사는 양 손에 펼쳐진 흉터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반대편 절벽의 날카로운 끝자락을 붙잡고 데롱데롱 메달려 있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는 짐승들이 반대편 절벽에서 분노에 차 울부짖는 소리를 떠올렸다.
형제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형제는 손을 버둥거리며 어떻게든 절벽 끝을 잡으려 했지만,
결국 형제는 그날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전사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마침내 명상에서 깨어난 전사는 머리를 들어올렸다.
'시작한다,' 그가 말했다.
성가들이 울려 퍼진다. 로브를 입은 시종들이 바쁘게 앞으로 다가왔다.
첫번째 장갑판들이 전사의 신체 위에 씌워졌다.
인터페이스 소켓들이 척추 플러그들에 락온되었고,
바늘촉같은 고통이 신경계들을 타고흘렀다.
장갑판들이 장착되며, 아직 가동되지 않은 갑주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는 시야 너머에서, 아포테카리의 녹색 렌즈광이 그를 주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백색 갑주는 뚝뚝 흘러내리는 피로 얼룩져 있었으며,
크롬 사지들의 메스날들과 의료 톱들이 그의 개방된 흉곽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지금 자기 자신이 흘리는 피로 익사 중이었으며,
다만 쿵쿵 삐삐거리는 기계들에 의해 간신히 살아있을 뿐이었다.
금속의 거미손이 그의 시야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차갑게 식은 싸늘한 살덩어리가 거기 걸려 있었는데,
그 안에서부터 피와 배양액이 몸으로 주입되고 있었다.
죽은 형제에게서 거둔 죽은 자들의 살덩어리가 산 자를 다시 재구성하기 위해 쓰이고 있었다.
그는 금속 손이 진-시드 기관을 자신의 개방된 흉곽 안쪽에 내려놓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천 세대의 전사들이 물려받은 선물,
그 또한 시간의 낫이 아닌, 전쟁 속에서 죽으리라는 약속에 대한 보장.
몸에 장착된 장갑이 가동되었다.
서보들과 인공 근육 섬유들로 동력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 감각은 곧 가슴 안의 온기로 거듭나고,
힘은 사지들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비록 그는 웅장함과 경외감 둘 다에 해당하는 존재였으나,
정작 그는 그러한 것들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었다.
다만 그가 유일하게 알고 있었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감각 뿐이었다.
시종이 전사의 헬멧을 전사의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는 늙었기에, 전사는 그가 화염의 구경들과 전쟁의 기도문들을 읊는 동안 기력을 잃어가는 걸 들을 수 있었다.
헬멧은 전사의 머리 위에 장비되었고,
잠시 동안 어둠과 함께 전사의 세계는 다시 침묵과 고요 속에 잠겼다.
곧 헬멧 또한 각성되었다.
타게팅 데이터, 위험물 마커들과 각종 정보들이 그의 시야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전사가 자신의 무기들에 손을 뻗어 그것들을 쥐자,
탄약 카운트 수치들이 빛나며 떠올랐다.
시종과 서비터들이 뒤로 물러나, 다시 입을 다물었다.
전사는 고요했다. 전쟁의 반신, 여름 하늘의 청량한 하늘색을 품은 죽음의 천사.
분노가 살로 빚어져, 갑주를 드리운 존재.
바로 여기서 그는 자신이 탄생한 목적이 담긴 삶의 현장을 향해 투입될 것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그의 마지막일 수도 있고,
혹은 여기에서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귀결될 길을 향한 단순한 한 걸음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중요치 않았다.
그가 전사이자 죽음이라는 것만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그가 설령 쓰러지더라도, 다른 자가 그가 있었던 자리에 다시 올라와
혈관들을 타고 흐르는 '죽은 자들'의 맥박을 느낄 것이었다.
마침내 그가 앞으로 걸어갔다.
ps. 아 신나게 싸우는 단편인 줄 알고 했더니,
뇌내망상 시뮬레이터 돌리는 내용이었네..
갠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의 단편.
그나저나, man 단수가 아니라 men 복수로 쓰여 있었는데,
그게 세심한 뜻이 담겨져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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