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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nd time : khaine


두 엘프들이 학자와 만나 동행하고 얼마쯤 지나,

세 명의 여행자들은 어떤 비틀린 외형의 기이한 수정 하나가 뜬금없이 한복판에 솟아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정글의 나무들 사이를 뚫고 빙글빙글 올라가는 형태였는데,

어쩔 때에는 지면 아래서 솟구쳤다가도,

다른 때에는 그대로 하늘로 굽이치며 올라가기도 하였습니다.

학자는 그 기이한 수정을 가리키며 저것은 젠취의 영토 중 일부라 설명해 주었으니,

저주받은 영혼들로 가득 찬 수정 미궁의 일부라 알려주었습니다.

신난 학자가 신선한 새 종이에 깃펜을 옮겨 열심히 적기 시작하는 동안,

아랄로스는 수정 안에 갇힌 한 필멸자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 얼굴의 표정은 수정의 면면마다 옮겨다니며 수시로 뒤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에, 엘프는 순풍을 타고 흐르는 수정에 갇힌 죄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로잡힌 자는 자신이 한때 제국의 마법사였는데,

어쩌다가 마법의 돌 하나를 만들어버려서

그것을 통해 필멸 세상과 불멸의 세상 간 장막을 건너 뛰어버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서러는 불멸 세상을 탐험하던 도중 그만 사로잡혀버렸고,

이제는 두 엘프들에게 그를 풀어달라 비는 신세가 되어버렸지요.

소서러는 두 엘프들에게  절박하게 빌면서, 자신을 살려주면 힘을 다해 도와주겠다고 애원했지만,

아랄로스는 그의 말 속에 무언가 표리부동함이 깃들었다는 생각에 이를 꺼려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학자가 직접 가능한 한 그를 구해달라 부탁하였으므로,

아랄로스는 마지못해 그를 구하기로 결정하였지요.

가능한 한 구하는 것이 좋겠다고, 학자는 강력하게 주장했고

두 엘프가 동의하자 학자는 희망 중에서도 가장 희망찬 기억을 엮어 밧줄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은 가장 따뜻한 희망으로 엮은 밧줄을 미궁 바깥에 걸었는데,

이를 통해서 제아무리 깊은 미궁의 심연으로 들어갈지언정 다시 헤쳐나올 수 있을 터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랄로스와 학자는 너글의 정원 한복판에 솟구친 수정 입구로 들어가며,

이번에는 젠취의 수정 미궁에 발을 디디게 되었습니다.

칼라라는 수정 입구 바깥에서 희망으로 엮은 밧줄을 붙잡는 앵커 역할을 수행하였고,

아랄로스의 매 스카린 또한 그녀의 어깨에서 감시역을 맡았습니다.

숲지기 여자의 두 손은 릴리아스에 대한 기억들로 엮은 밧줄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으니,

그 소중한 기억의 희망이란 심지어 젠취조차도 감히 왜곡하지 못할 터였습니다.


한편, 미궁 안에 들어선 아랄로스는 매 걸음마다 광기가 사방에서 밀려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미궁을 이루는 수정들은 그 반짝이는 표면 면면마다 절대 있지 않았던 과거 모습들과,

그러한 있지 않았던 과거들이 만들어낼 수 있었던 있을 수 없는 미래들을 사방에서 보여주었으니

그대로 계속 수정들에 반사되는 온갖 환영과 미래 비젼들을 쳐다보았다가는 미칠 것 같았기에

탈센의 군주는 두 눈을 단단히 감고 대신 학자에게 수정 미궁 복도들 속에서 자신을 인도해달라 부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온갖 위협들과 약속들이 아랄로스의 마음 속에서 속삭임을 들려주었으나,

그 범람하는 거짓 속에서도 그는 릴리아스에 대한 기억이 주는 희망 하나에 의지하였으니

결국 희망 앞에 헛된 목소리들은 점점 가라앉았습니다.

거의 1년 같은 시간이 흐른 끝에,

아랄로스와 학자는 마침내 소서러 앞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그는 제 미래가 만들어낸 발톱에 단단히 쥐인 채로 옥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아랄로스가 그에게 다가가자 악마의 형상이 비명소리를 내질렀으나,

엘프는 마침내 두 눈을 뜬 다음 그대로 창을 내질러 악마 생명체를 꿰뚫어버렸으니,

창에 꿰뚫린 악마는 이내 수천 조각의 수정 파편들로 깨져서 사라졌습니다.


한편, 심지어 수정 미궁 바깥에 있었음에도

칼라라는 아랄로스를 괴롭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속삭임들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그는 거기에 조금의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여신 릴리아스께서 숲지기 여자에게 하사한 임무란 심지어 아랄로스가 아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고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니,

그녀는 이 임무의 성사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단단한 결심을 지니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녀는 희망적인 기억들로 엮은 밧줄을 어느 방해와 순간이건 절대 놓치지 않았으므로

그 덕분에 마침내 아랄로스와 학자, 그리고 소서러가 미궁의 끝없는 심연 속에서 다시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약간의 정비 후에, 이 탐험자들은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허나 그들 사이에 딱히 말은 없었지요.

왜냐하면 아랄로스와 칼라라는 미궁 체험 덕에 많이 지친 상태였고,

학자는 미궁에서 본 온갖 경이들에 신나서

필멸자 특유의 혼란스러운 기억력이 다 날아가기 전에 서둘러 이를 기록하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소서러 쪽은, 과연 아랄로스의 예상대로 다소 무례하고 동떨어진 동료였는데

특히 두 엘프의 목적지가 무엇인지를 듣게 된 이후로는 아주 꺼림직한 기색을 보였으나,

그래도 제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겠노라고 동의하긴 하였습니다. 

Posted by 스틸리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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