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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nd time : khaine


(엘프의 신 중의 신, 아슈리안이 잡신들을 모두 재와 석상으로 만들어버린 후.)


아랄로스와 칼라라는 화염으로 뒤덮힌 포탈을 통해 내려갔는데,

포탈을 통해 다시 나타난 곳은 꿈꾸는 나무 아래의 돌로 뒤덮힌 황량한 골짜기,

즉 대부분에게는 카오스의 세계라 알려진 세계였습니다.

그들 앞에 펼쳐진 협곡 아래에는, 누런 안개에 반쯤 가려진 썩은 숲의 가지들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지요.


릴리아스는 엘프들의 여신 중 하나인 샬랴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너글의 저택 심장부에 갇히게 되었는지를.

릴리아스가 말하기를, 샬랴는 반드시 구출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엘프들에게 이샤가 그러하듯,

향후 도래할 미래에 인간들이 생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였지요.

만약 그녀를 구하지 못하여 역병이 그나마 남은 세계 전체를 뒤덮게 된다면,

울쑤안의 운명이 경각에 달한 지금 이 순간조차도 결국엔 아무것도 아니게 될 터였습니다.

구출의 순간은 반드시 지금이 되어야 했습니다.

너글은 이미 제 형제 신들과 계약을 가져 세상을 말아먹기 시작했으며,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다시 제 저택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요.

더욱이, 샬리가 그녀의 온 힘을 다시 발휘하기 위해선 수 달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였으니,

이미 시간은 촉박하다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릴리아스조차도 아랄로스와 칼라라를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로써는 자신이 잡히는 위험 부담을 감수할 수 없었으니까요.

대신 그녀는 자신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권능을 그와 그녀에게 내려주었으니,

오염만이 가득한 그 땅에서조차 이 한 쌍의 남녀 엘프가 무사히 거닐 수 있도록 축복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신은 떠나기 전에, 그와 그녀가 건너온 포탈만은 반드시 온전히 남을 것임을 약속해 주었으니,

바보들의 다리 끝에 포탈이 열려 있을 것임을 당부하였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릴리아스는 사라졌고, 두 엘프 남녀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랄로스와 칼라라는 썩어가는 정글로의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아마 올드 월드에서도 아주 소수만이 이와 같이 끔찍하고 위험한 세계로의 여정을 받아들일 터이지만,

이 엘프들은 아델 로렌에서 왔으며,

너글의 정원 또한 어쨌든 그와 비슷했습니다.


물론 가장 극악했지만요.


가시 가득한 썩은 덩쿨들이 그들의 사지를 긁고,

온갖 기어다니는 것들이 그들 발치를 끌어당겼습니다.

현란한 색상의 꽃들이 기이한 액체들을 뿌렸고,

온갖 균류와 버섯들이 녹빛 포자들을 토해냈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구더기 떼들이 눅눅한 대지 위를 기어다녔고

악마 파리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흑색 구름들이 나무들 사이를 지나다녔습니다.

노출된 나무 뿌리들은 그와 그녀 아래서 꾸물거렸고,

연약한 껍데기는 곧 터지며 엘프 부츠 밑창을 갉아먹는 산성 점액들을 토해내었지요.

흐른다기보다는 스며드는 것에 가까운 개골창들도 있었는데,

그 역한 점성의 물들은 녹아서 점액질화된 살덩이들의 악취가 가득 흘러나왔습니다.


때때로, 아랄로스와 칼라라는 날카로운 뿔 소리 내지는 어떤 종 소리 같은 것을 들었는데,

그 때마다 즉시 거대한 양치류 잎들 사이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정글 깊숙한 곳에서부터 그들을 찾는 것이 다분해 보이는 너글의 사냥꾼 악마 떼가 모습을 드러내었지요.

대체로는, 아랄로스의 날카로운 눈을 지닌 매, 스카린이 그 날카로운 음성으로 발견되기 전에 알려주어 엘프들을 살려주었지만,

때때로 적들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하였으니

가끔은 악마 추격자들은 너무 가까이 오기도 하였고,

몸을 숨기기엔 위험한 덤불들이 가득한 장소에 놓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엘프들은 오직 제 검날에 의지하여 목숨을 건져야만 하였습니다.


한 번은, 아랄로스가 구더기에 찌든 나무의 처마 아래에 몸을 숨겼는데,

그 순간 시끄러운 수렁이 그를 빨아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탈신의 군주는 그 진창의 포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투를 벌였는데,

하필 칼라라는 꾸물꾸물 절뚝거리는 악마 추격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전투를 벌이느라 그를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허나 전투는 나무 자체가 전투에 갑자기 개입함으로써 기습적으로 끝나버렸는데,

나무는 그 섬유질 뿌리들을 휘둘러 악마들을 붙잡아서는 아래의 수많은 송곳니 아가리들에 던져넣고 삼켜버렸습니다.

이어 악마는 엘프들까지도 입 속에 털어넣으려고 했지만,

당연하게도 릴리아스의 축복이 놈의 혐오스런 촉수들을 몰아내어주었지요.

칼라라가 마침내 아랄로스를 끌어올려주었을 때,

탈신의 군주는 그의 피부 위로 갑충마냥 절지화된, 백골색 거머리들이 가득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거머리들은 어찌나 독한지 매 스카린이 그 날카로운 발톱들로 일일히 뽑아내야

피를 사방에 뿌리며 떨어져 나왔지요.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아랄로스와 칼라라는 곪아가는 정글을 방랑하였습니다.

이 세계에는 그 날들을 가늠이나마 할 수 있게 해줄 태양도 달도 없었고,

그 하늘에는 하다못해 방향이라도 잡아줄 별들조차 하나 없었습니다.

있는 것이라곤 역한 황토색으로 뒤덮힌 하늘과,

풍요로운 부패의 악취,

눅눅한 훈풍 사이로 들려오는 끔찍한 비웃음소리 뿐이였지요.

엘프들은 마침내 자신들이 길을 잃었음을 깨달았으니,

너글의 저택은 커녕 그 비슷한 것의 흔적조차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지옥 속에서, 아랄로스는 릴리아스의 인도를 받고자 끊임없이 기도를 올렸으나

달의 여신은 여전히 침묵만을 지켰지요.


거의 영원에 가깝게 느껴지는 방랑 끝에,

아랄로스와 카랄라는 마침내 그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허나 그 도움은 그들이 믿는 여신이 아니라,

대신 주변에 죽은 나무들로 뒤덮힌 한 빈터에서 만난 인간 학자에서 얻을 수 있었지요.

그는 분명 악마가 아니였고,

다만 필멸 인간 남자로써 영락없이 지친 기색에 어디론가 제 갈길을 가며 끊임없이 혼잣말을 지껄이고 있었는데

한 손에는 깃펜을 들고 다른 손에는 펼친 공책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의 등 뒤로는 수많은 책들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그 책들 각각은 신들의 영토들에 대해 기록된 기록으로 가득했으며

그의 벨트에는 드워프제 강철로 만들어진 검 하나가 메여 있었는데

검 표면에 새겨진 룬들은 정화의 불경한 빛으로 붉게 타오르며 불똥을 튀어내고 있었습니다.

학자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피를 흘리고 있었고,

피부는 물집과 상처들로 좀 얼룩져 있었으나

그는 여전히 미소와 함께 스스로 하찮은 농담을 중얼거리고 있었지요.


처음에 그 학자는 그들을 경계하며,

두 엘프들을 위험분자들로 판단하였으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욕심에 넘어가 결국 두 엘프들을 돕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학자는 카오스의 세계에 갇혀 거의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배회하고 있었는데, 

신들이 그로 하여금 이 세계 전체를 기록하길 원하는듯 보였으니,

덕분에 어찌어찌해서 무사히 살아있는 중이였습니다.

그런고로 학자는 엘프들이 알아낼 수 없는 길조차도 알아낼 수 있었으나,

그는 도움을 주는 만큼 방해도 주고 있었습니다.

학자는 그가 본 것들을 분류하고 적느라 수시로 가던 길을 멈추기 일수였는데,

그가 멈출 때마다 엘프들 또한 발을 멈추어야만 하였지요.

그래도 엘프들은 최대한 인성을 발휘하여 그의 기행을 꾹 참아주었고,

필요할 때마다 검들을 휘둘러 사방에 가득한 위험들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고로 일격에 살해당하지 못한 희생자들은 온갖 종류의 기괴하고 치명적인 병들에 시달리게 됩니다.


ps. 엔드 타임 진행 도중 울쑤안이 가라앉으려는 때에,

아랄로스는 샬랴(인간이 믿는 치유의 여신)를 구하기 위해 너글의 정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

Posted by 스틸리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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