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먼은 테라로 돌아와 황제와의 재회를 가지려는 그 순간에도 무시무시하고 두려운 걱정을 짊어지고 있었다.
만약 그의 아버지가 실은 죽었다면? 혹은 광기에 돌아버렸다면?
아니, 만났을 때 대화가 가능하기는 할까?
테라로 돌아와, 마침내 왕좌의 방에 입장을 허가받아 황금 옥좌로 다가가던 순간에,
그는 첫번째 아버지인 코너의 영결식에 올랐던 때를 떠올렸었다.
당시 그는 모든 것을 기꺼히 수행하며, 확실한 슬픔과 애도에 잠겼었다.
허나 황제가 옥좌로 승천했던 그 날 이후부터, 이후 길리먼 본인이 죽음을 맞이했던 그 순간까지도,
황제는 그에 대해서 단 한 마디의 말도 남기지 않았다.
과연 어떤 존재가 1만년이나 되는 세월을 버틸 수 있겠노라고, 옥좌를 향해 오르던 그 순간에 길리먼은 생각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 자리에 놓여 있었던 것은 역겨운 기계들에 둘러싸여, 무릎에 검 하나를 둔 채로 시드라든 송장 하나였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슬픔과 비탄만이 가득했다.
황제의 목숨을 연명케 하기 위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희생에 프라이마크는 치를 떨었다. 그나마도 그가 만약 살아 있기나 할까?
길리먼의 눈에 보기에, 그는 죽은 상태였다. 길리먼은 다시 만난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광명과 불길의 단어들로, 황제는 그의 돌아온 프라이마크, 그의 가장 뛰어난 창조물들 중 마지막의 귀환을 칭찬했다.
허나, 그것은 아들을 위해서가 아닌,
단지 창조물일 뿐인 존재에게 내리는 말에 불과했다.
살아있을 적의 황제는 예술적인 존재로, 타인들의 생각을 읽는것 만큼이나 본인의 생각들을 감추는데 뛰어났다.
다시 만난 황제의 잔해는 여전히 이해를 넘어서는 강력함을 지니고 있었으나,
이전 인간들과 함께 걸었던 그 때에 비하자면 그 미묘함이 아주 결여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길리먼은 황제와 다시 대화하던 그 순간을, 마치 눈 앞에서 태양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고 회상했다.
황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를 태우는 태양의 열기와 같이 진정으로 순수하게 느껴졌으므로.
그리고 그 순간에, 길리먼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지금껏 듣지 못했었던 진실들이였다.
그 자리에서, 황제는 길리먼을 반겼었지만,
그것은 아비가 자신의 아들에게 대하는 것이 아닌,
한 장인이 자신이 오래 전 잃어버렸다 생각했던 도구를 다시 되찾았을 때의 그것과 똑같은 태도였다.
황제는 마치 강철 철장에 갇힌 상태에서, 철창을 가는데 필요한 강판을 놓쳤다가 다시 손에 넣게 된 죄수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길리먼은 낙관에 사로잡혀 황제의 태도를 오해하지 않았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 자리에서, 그는 황제에게 있어 강판을 가지고 온 사람조차도 아니였다.
그저 강판 그 자체에 불과했다.
황제가 별들을 거닐 적, 그는 자신의 속임수와 기만을 사랑이라 속였다.
황제는 자신의 프라이마크들에게 자신을 아비라 부를 수 있게 해주었고,
프라이마크들이 스스로를 '그 분의 아들들'이라 부를 수 있게 해주었다.
허나 그는 그 단어들을 직접 스스로 부르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다시 대면해서야 길리먼은 깨달을 수 있었다.
애초에 황제에게는 그런 단어들을 사용함에 있어 진정성 같은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전까지는 생전의 육신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황제 본연의 무시무시한 의지가 마침내 그대로 노출되자,
길리먼의 두 눈을 이전까지 가리고 있었던 것들이 마침내 걷힐 수 있었다.
진실은, 황제가 프라이마크들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도록 허락한 것이였다.
그리고 황제는 그들로 하여금 황제께서 자신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끔 속였을 뿐이였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도.
프라이마크들은 그저 그의 무기들에 불과했다. 그제 진실의 전부였다.
황제 폐하의 힘은 여전히 막강했고, 어쩌면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을지도 모르지만
황제로써의 인간성은 이제 영영 사라지고 없었으므로
이제 황제는 더 이상 인두껍의 가면을 쓰고 자신의 생각들을 감출 수 없게 된 것이다.
재회의 그 자리에서, 길리먼의 눈 앞에 보이는 황제의 빛은 너무나도 강렬했으니,
길리먼을 포함한 주변 모든 것들을 휘감았으나,
그 속에서 마침내, 마침내ㅡ길리먼은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을 온전히 모두 볼 수 있었다.
그가 아비라 생각했던 존재는 이제 더 이상 예전에는 숨겨왔던 그 진실들을 숨길 수 없었다.
황제는 그의 자식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물건들에 불과했다.
길리먼과, 그의 모든 형제들은 그저 결말을 위해 필요한 수단들에 불과했다.
그때 마티유가 미소지었다. '군주이시여, 그 분은 이제 저희 모두의 아버지이십니다.
당신께서 소위 '그분이 우리들에게 거짓을 고하고 있었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그 만남의 자리에서,
황제께서는 직접 당신에게 그 분 본인이 지니고 있는 신성성에 대해서 설명하시지 아니하시던가요?'
이제 프라이마크의 얼굴 위로 떠오른 혐오는 한층 더 선명해져서,
사제의 입을 닥치게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의 분노를 표현해주고 있었다.
'나의 다른 군교회-주교사들은 내가 테라로 돌아올 적, 그 분의 옥좌실에 들어갔던 그 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묻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아주, 빠르게 배웠는데 말이네,'
길리먼이 부드럽게 타일렀다.
'이것만큼은 부디 잘 알아들었길 바라네. 그리고 이제, 이 신학적 토론은 충분히 이루어진 것 같군.
이제는 에스판도르 행성에서 적의 이점을 제거하는 실질적인 행동이 필요한 시간이네.'
길리먼은 그의 아비의 검을 부드럽게 뽑았다. 마티유는 그 광채에 숨을 헐떡였다.
그는 이전에 황제의 검을 수 번 정도 보았었지만,
볼 때마다 그는 이를 기적이라 여겼다.
칼집을 떠난 검의 표면 위로 불길이 붙기 시작했다.
길리먼은 신부가 경탄하는 것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사실 이 무기에는 고수준의 워프 공예가 적용되어 있었으므로.
검이 황제의 쭈글쭈글하게 시든 무릎치에서 벗어나 어뎁투스 커스토디스의 캡틴-제너럴의 손에 의해 길리먼에게 전달되었을 때,
검은 놀랍게도 프라이마크의 신장에 완벽히 일치했다.
그 때를 회상하며, 길리먼은 눈살을 찌뿌렸다.
그는 황제가 얼마나 거대했었는지를 떠올리려고 시도했지만,
그의 살아있는 기억은 이상하리만치 떠올리지 않았다.
어떤 기억들에서 그는 길리먼만큼이나 큰 크기였지만
어떤 기억들에서는 그저 필멸자 수준이였다.
'그 분의 신성이 느껴지는구나!' 마티유가 소리질렀다.
그는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마치 황제 본인이 그와 시선이라도 맞추는 마냥,
불길이 만들어내는 반짝이는 그림자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그 분의 존재가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으니. 그 분의 영험함이 내게 느껴지는구나!'
길리먼은 검의 반짝이는 칼날을 바라보았다.
실은 그가 검을 쥐었을 때, 그 또한 황제가 근처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황제가 방문한 후에도 여전히 그 기운의 반향을 담고 있는 장소들이 실제로 존재했었는데,
이 검 또한 황제의 것으로, 바로 이 검으로 황제는 호루스를 살해하고 헤러시의 전쟁을 종결지었다.
대략 그런 식이겠지.
길리먼은 무기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고, 불빛이 그의 두 눈 앞에서 춤추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불이 어떻게 타오르는가에 대한 것은 과학에 기반을 둔 질문이 아니라, 대신 워프에 기반을 둔 질문이였다.
허나 동시에 검날과 그 자루를 장식하는 기계들은 과학에 기반을 둔 것이였다.
그의 아비는 양 면에서 모두 뛰어났고, 그건 그 어떤 인간도 해내지 못한 것이였다.
검은 길리먼의 연구에도 끝내 알아낼 수 없는 본질을 담고 있었고,
길리먼은 앞으로도 이 검을 따로 누군가에게 맡겨 연구토록 하게 할 생각이 없었다.
바로 이러한 기술들 때문에, 마그누스는 비난을 받았었다.
그리고 선의에 대한 믿음 아래 보내진 경고에 대한 황제의 보복은 또다른 끔찍한 악을 만들어내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만들어낸 또다른 오판이였다.
그리고 오직 인간만이 그러한 수많은 실수들을 만들어내는 법이다.
그는 신이 아니다.
그것에 대한 반박은, 그 어떤 인간도 그만큼이나 뛰어날 수 없다. 이다.
만약 한 인간이 신만큼의 권능들을 지녔다면, 그는 신이 아닌가?
길리먼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것이 바로 마티유의 믿음의 본질이였다. 신학적인 논리.
어쩌면 그가 맞을 가능성도 있다. 나 또한 오판에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므로.
어쨌거나 그는 검을 쥐었고, 그것을 들어올렸다.
검의 온기, 주홍빛 불이 만들어내는 빛이 주변의 어둠을 몰아낸다.
은은한 향의 향기가 방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뒤편에 라이브러리안들은 그들의 손을 꽉 쥐며 퇴마 주술의 기도문들을 경건히 읊기 시작했고,
그러자 그들의 두 눈들과 손들 주변에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힘이 광채가 되어 빛났다.
한편 자매들은 시계에 한 발자국 더 가까히 다가가,
그 사악한 힘을 억누르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너는 여기 있어야될 것이 아니다,' 길리먼이 말했다.
그것이 저주받은 돌시계에 대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길리먼이 만들어낸 아비의 흐릿한 잔향에 대고 하는 말인지는 불분명했지만.
그가 다시금 말했다.
'워프로 사라지거라!'
단호한 외침과 함께, 그가 검을 내리그었다.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황제의 검은 카오스에게 극독이였다.
검은 마치 버터를 가르듯 단박에 시계의 다리 하나를 잘라내었다.
그러자 기계가 요동치며, 시계초가 이탈하거나 진동추들끼리 부딛히며 충돌했다.
이제 장부정한 석기계에 위에 올려진 기계 중심의 시계 장치는 균형을 잃었기 때문인지 더 많은 압력이 가해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스파크들이 계속해서 석기계 표면 위로 튀어올랐지만,
장치는 아직 넘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더 빠르게 진동하고 점점 더 밝아져갈 뿐이였다.
기계가 쓰러지지 않자, 길리먼은 3개 중 두번째 다리 앞에 섰다.
그리고 즉시 검을 올려 그것을 내리쳤다.
두번째 다리 또한 완벽하게 잘렸다.
시계가 다시금 요동쳤다.
이제 무게중심은 한쪽에 모두 쏠리고 있었다.
시계는 잠시나마 버텼지만,
곧 금속과 돌이 마찰하며 내는 소음과 함께 시계와 그것을 지탱하던 선돌이 함께 무너져 내렸다.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바닥에 충돌하며, 곧 기묘한 빛 또한 사라졌다.
충돌과 함께 기계태엽들이 충돌하자 시계는 이상한 소리를 내었지만,
메카니즘 자체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프라이마크는 저주받은 시계를 파괴할 것을 지시했다,
'이것을 치워라,' 그가 침묵의 자매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든 조각들을 남김없이.'
그들이 앞으로 나섰다. 퓨전 렌스 한 정이 동원되었고,
뒤이어 라스커터들까지 동원되며 침묵의 자매들은 잔해 해체 작업에 돌입했다.
길리먼은 그녀들이 작업하는 것을 감독하다가, 이내 등을 돌려 마티유를 바라보았다.
마티유는 여전히 동경 속에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를 떠나기를 조언하지, 군교회-주교사,' 프라이마크가 말했다.
'다시금 말하지만, 이 장소는 자네에게 안전치 못하네. 자네는 여기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어.'
그 순간 마티유의 얼굴에서 황홀감 대신 다른 무엇인가가 떠올랐다. 그는 이제 눈살을 찌뿌리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제 군주이시여, 저에게..' 괴로움 속에 그가 눈을 깜빡이며 길리먼 너머의 무엇인가를 가리켰다.
'섭정 각하!' 티그리우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무엇인가가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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