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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Volume 5 Archaon



에필로그 :

그리하여 모든 것들은 소멸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껏 지켜온 인류 영토의 심장부에서부터 열린, 만물을 집어삼키는 균열은 현실 그 자체를 흡수해나갔지요.

퍼지는 순간은 처음에는 느렸지만, 곧 모든 것을 불태우는 들판 위 들불처럼 거세게 번져갔습니다.

먼 옛적, 올드 원들이 이 세계를 수호하기 위해 봉인해두었던 양 극지의 균열 포탈들 또한 마침내 그 봉인들에서 해제되어,

이제 막 깨어난 자신들의 어린 형제와 함께 이 세상을 식탁 위에 두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세계의 거주자들은 자신들의 멸망을 지켜보며, 절망과 공포 속에 비명과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 중 단 두명조차도 같은 광경을 본 자가 없을 정도로 멸망 전 세상은 그렇게 혼란스러웠습니다.

일부는 불길로 뒤덮힌 하늘을 보았습니다.

일부는 하늘 위에서 얼음만치 차가운 별들의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를 볼 수 있었고,

다른 이들은 거대한 촉수들과 카오스의 순수 에너지를 흘리는 송곳니 가득한 아가리들을 볼 수 있었지요.


그 화염 속에서 펼쳐지는 혼돈의 전투들 중에 일부 카오스 투사왕들은 어둠의 신들에 의해 악마의 반열로 승천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허나, 사실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였지요.

왜냐하면, 진실은 그 모든 희망 없는 전쟁이 사실은 의미 없는 헛된 것이기 때문이였습니다.


세월의 떡갈나무가 그 모든 것들 중 마지막으로 무너졌습니다.

아델 로렌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비통한 드리야드의 노랫소리가 자줏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울려 퍼졌지요.

떡갈나무의 파괴와 함께, 세계의 시간과 공간을 지탱하던 세계의 그물망 또한 점차 옅어지고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는 기이한 에너지들에 의해 비틀리다가, 무로 완전히 분해되어 사라졌지요.


그 끔찍한 무로의 회기는 어쩌면 눈 하나 깜빡할 사이 이루어진건지도,

아니면 수천년에 걸쳐 이루어진걸지도 모르는 일이였습니다.

어둠의 신들은 시간에 구속받는 존재들이 아니였으므로,

그냥 그대로 소멸되게끔 나두고 시선을 돌렸지요.

이미 최후의 승리에 질려버린 신들은, 한때 올드 월드였던 폐허에서 눈을 돌려 다른 차원들과 다른 창조물들을 두고 새로운 '위대한 게임'을 준비하거나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들은 작은 단 하나의 빛.

끝없이 펼쳐진 심연의 어둠 속 작지만 밝게 빛나는 작은 빛 하나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한때 한 사내였던 자의 빛나는 실체였습니다.


비록 그는 무의 폭풍 속에 떨어져, 억겹의 세월을 무의 해류 속에 포류하고 있었지마는,

곧 작은 별똥별 하나가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심연만치 차가운, 세계의 마지막 남은 심장이.


그 사내는 필사의 심정으로, 산조차도 뒤흔들만치 강한 힘으로 그 작은 별을 움켜쥐었습니다.

그리고는 공허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끝없는 우주 속에서, 우주가 그를 돌아보았습니다.


사내는 별을 단단히 잡은 채로,  사라졌던 힘을 다시 끌어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돌아봐준 공허에게로 손을 뻗었고, 무언가 기적 하나가 마침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미래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인가?

아직 펼쳐지지 않은 이야기들이란 어떤 것이 될 것인가?

별들은 과연 어떻게 순환할 것인가?




그리하여, 진정한 엔드 타임이 이렇게 펼쳐졌습니다.




허나, 끝은 곧 시작인 법이지요.




ps. 이렇게 해서 올드 월드는 (만빡이의 통수로 인해)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한 세계가 완전히 사라졌고,

그리고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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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Volume 5 Archaon


화신들에게서 뺏은 힘을 흡수함으로써,

균열은 더욱 거대하게 팽창하였습니다.

의식의 방은 이미 한계까지 도달하여 무너져내리고 있었습니다.

벽들은 마구 요동치며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고,

갈라진 틈들로는 세계수가 흘리는 썩어버린 누런 혈액들이 흘러내리고 있었죠.

세계수 지하의 광활한 구역들 전체가 어둠 속에 잠겨버렸고,

그 어둠 속에서는 저 너머에서 건너온 심술궃은 눈동자들과 으르렁거리는 이빨들이 가득히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천장에서는 돌들과 종유석들이 마치 비처럼 쏟아져 내렸지요.


티리온은 거대한 돌덩어리 하나가 천장에서 떨어지며 곧 바로 아래의 알라리엘을 덮치려는 것을 보았습니다.

왕자는 경고의 고함을 내질렀으나,

의식의 방 전체가 무너져내리는 소란 속에 묻혀 그녀에게 전달되지 못했지요.

그대로였다면 에버퀸은 돌덩어리에 깔려 쥐포가 되어버렸을 겁니다.

만약 말레키스가, 그 자신조차 앞으로도 영영 모를 이유로 불연간에 몸을 날려, 알라리엘을 밀쳐내지 않았더라면 말이지요.

에버퀸은 묵직한 소리와 함께 나가 떨어지며 머리를 지면에 세게 박았지만,

최소한 무너져내리기 시작한 돌덩어리들의 경로에서 피할 수는 있었습니다.

허나 말레키스는,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으니

이터니키 킹은 두 다리가 돌덩어리들에 완전히 깔아뭉게 으깨졌고

결국 날카로운 고통의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지요.


한편 저 아래에서, 거대하게 입을 벌린 심연의 균열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카온은 끝끝내 소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강렬한 악의 의지 아래 마지막 남은 온 힘을 쥐어짜내어 균열의 벽면에 들러붙어있었고,

화신들이 마지막으로 필사의 의식을 거행할 즈음까지도 그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오히려 한술 더 떠서 악착같이 고통에 휩싸인 손을 위로 뻗어가며 저 까마득한 위에 보이는 들쭉날쭉한 벼랑 끝까지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리하여 만프레드가 헛짓을 벌일 즈음엔, 에버쵸즌은 마침내 벼랑 위까지 기어오르는데 성공하였지요.

기어오르는데 성공한 아카온이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지그마가 말레키스를 돕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였습니다.

그것을 본 아카온은 증오의 울부짖음을 토해내며,

방심한 황제를 등 뒤에서 들이받았습니다.


온 힘을 거진 다 써버린 아카온의 포효성은 가히 이성없는 짐승에 가까웠고 또한 악착같았습니다.

생생한 분노와, 끝없는 모멸감과 영혼을 썩혀들어가는 증오를 지지대 삼아,

그는 다 부셔진 건틀렛 주먹들을 마구 휘둘러 황제를 두들겨 때리며 어떻게든 황제를 무너트리려고 애를 쓰며

그를 균열의 벼랑 끝으로 계속해서 밀어내었습니다.

갈 마라즈가 그를 스치듯이 강타하며,

두꺼운 갑주 판갑들을 찢어버리면서 그 아래의 살까지도 난도질하였지만

심지어 그러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에버쵸즌은 악랄한 의지 아래 아주 조금 기세를 늦출 뿐이였습니다.

지그마가 다시 한번 강타를 먹여주기 위해 망치를 드높게 들었지만,

그 순간 아카온은 몸을 내던져 지그마를 다시 한번 들이받았고

지그마가 내리치려던 망치의 자루 부분을 온 힘을 다해 잡아 막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두 사내는 모든 것을 삼키는 균열의 벼랑 끝에서도 서로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이 도래했고,

끝내 그들은 소용돌이치는 어둠의 심연 속에 사라졌습니다.



ps. 누가 레슬링했다고 전에 써놨는데,

wrestle on 이걸 그냥 레슬링한다고 써놓은거 같음.

물론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씨름한다는 뜻도 있으니까.)

여기서는 격투라고 해석하는게 당연하므로 싸우는 것으로 번역했다. 

올드 월드 마지막 순간에 뜬금없이 씨름이 뭐냐 씨름이..



Posted by 스틸리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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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Volume 5 Archaon


균열은 자신을 가두려던 필멸자들과 접촉함으로써 그 힘을 맛보았고,

이제는 '어쩌면 정말로 자신을 가뒀을지도 모르는 이들'을 향해 제대로 마수를 뻗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5명의 화신들은 균열이 그 영혼을 묶는 마법적 손길들을 뻗기 시작하자 고통 속에 비명을 질렀는데, 

심지어 신적 존재로 거듭난 나가쉬조차 이를 이겨낼 수 없어 필멸적인 고통 속에 울부짖었습니다.

화신들의 두 눈과 입들에서는 마법적 정수가 마구 흘러나와 균열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으니,

눈부신 백색과 음침한 회색빛, 선명한 옥빛과 역한 자주빛 등이 한데 모여 소용돌이치며 균열에 먹혀들어갔습니다.

마법풍들은 어둠 주변을 소용돌이치다가 이내 그 안으로 완전히 사라졌지요.


자신들의 마법 에너지들을 기습적으로 뺐겨버리자, 화신들은 하나둘씩 무너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말레키스와 나가쉬는 그 중에서도 가장 악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그림자와 죽음의 마법풍이 이미 오랜 기간 그들의 몸 일부가 되어버린 탓이였지요.

'불멸의 왕'은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는 그대로 쓰러졌고,

리치는 엄청난 당혹감과 공포 속에 자신의 불멸해야될 육신이 점점 풀리며, 처음 비롯되었던 것처럼 먼지로 돌아가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지그마가 아지르의 마법풍을 가지고 버텼지만 이것도 겨우 수 시간에 불과했고,

이내 더한 고통 속에 강제로 분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심지어 히쉬의 힘을 받아들인지 겨우 수 일 밖에 안된 티리온조차도 마치 끈들이 잘린 꼭두각시마냥 땅바닥에 쓰러졌을 정도였지요.

그나마 그는 다른 이들에 비하면 더 빨리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오직 알라리엘만이 물질적 고통을 감수하지 않을 수 있엇습니다.

기란의 힘이 떨어져나가며, 그녀의 세계수 연결망과의 연결고리 또한 그대로 잘려나갔지요.

아델 로렌의 여왕으로 등극한 이래로 처음으로,

알라리엘은 이때껏 불균형을 유지해왔던 세계가 질러오던 고통의 신음성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건 조금 위안이 되는 사실이였지만,

이 급작스러운 분리와 함께 그녀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독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와중에 만프레드는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알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두 눈을 앗아간 어둠의 대폭발은 덤으로 그의 지혜와 인지능력까지도 완전히 날려버린 덕이였습니다.

그리고 이건 마지막 순간 자신들을 택해준 이 멍청이에게 베푸는 카오스 신들의 마지막 작은 선물이였지요.

만프레드는 마치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위 둥둥 떠다니는 작은 유람선마냥 의식이 거행되던 방을 이리저리 비틀비틀 걸어다니며,

마치 어린애마냥 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옹알거리며 폭언과 욕설을 마구 지껄여댔습니다.


앞서 말했듯, 화신들 중에서는 티리온이 가장 먼저 회복해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의식이 망가졌다는 사실이 고통조차도 이겨낼 수 있는 강렬한 분노로 그의 심장을 지폈기 때문이였지요.

사실 왕자는 겔트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잘 몰랐으므로 그에 대해서는 별로 딱히 애도할 것도 없었지만,

그의 형제가 겔트의 짐을 옮겨지려다 결국 최후를 맞이했다는 사실은 끔찍한 마음의 짐으로 다가왔고,

덕분에 세계가 멸망하기 전 마지막 일이 될지언정,

그의 형제를 그토록 비참하게 사라지게끔 만든 단 한 놈에게 복수해야겠다는 결의가 그를 가득 채웠습니다.

만프레드의 갑주가 바윗벽에 이리저리 난잡하게 새겨놓은 긁힌 자국들을 따라,

왕자는 고통조차 감수하며 발걸음을 옮겨 만프레드를 추격해 들어갔습니다.


눈이 멀어있었기에, 뱀파이어는 티리온이 다가오는지조차 몰랐습니다.

만프레드의 견갑을 꼬나쥔 티리온은 그의 몸을 돌린 다음 선팽을 그대로 대머리의 복부에 쑤셔넣고는

그대로 검은 심장이 있는 부위까지 쭉 찢어 올렸습니다.

검이 그대로 쭉 올라와 심장을 가르자, 만프레드는 맥 빠지는듯한 칭얼거리는(rattling) 쉿소리를 토해냈는데,

선팽의 이글거리는 화염이 그의 생살을 태워버리기 시작하자 그 소리는 비참하게 울부짖는 비명소리로 변했습니다.

뱀파이어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며 티리온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떼썼지만,

그의 견갑을 잡고선 검을 배에 쑤셔넣은 왕자의 두 손의 손가락들은 풀릴 줄을 몰랐습니다.

곧 만프레드의 몸 전체가 불타올랐고,

그를 완전히 태워버리고 있는 화염은 티리온의 갑옷 위로 계속해서 무의미하게 흘러내렸습니다.


마치 영원과도 같은, 하지만 실제로는 겨우 수 분도 안되는 순간이 그렇게 지나가며

뱀파이어의 비명도 점점 잦아들었고

화염도 사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티리온은 그제서야 그의 손을 풀었고,

남은 자리에는 불에 타 검게 타들어버려 숯덩어리가 되어버린, 시들어버린 초라한 송장 하나만이 남았습니다.

한때 만프레드 본 칼슈타인이였던 그것은 그나마도 얼마 되지 않아 동굴 바닥에 무너지며 산산조각났지요.

Posted by 스틸리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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