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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Volume 5 Archaon


균열은 자신을 가두려던 필멸자들과 접촉함으로써 그 힘을 맛보았고,

이제는 '어쩌면 정말로 자신을 가뒀을지도 모르는 이들'을 향해 제대로 마수를 뻗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5명의 화신들은 균열이 그 영혼을 묶는 마법적 손길들을 뻗기 시작하자 고통 속에 비명을 질렀는데, 

심지어 신적 존재로 거듭난 나가쉬조차 이를 이겨낼 수 없어 필멸적인 고통 속에 울부짖었습니다.

화신들의 두 눈과 입들에서는 마법적 정수가 마구 흘러나와 균열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으니,

눈부신 백색과 음침한 회색빛, 선명한 옥빛과 역한 자주빛 등이 한데 모여 소용돌이치며 균열에 먹혀들어갔습니다.

마법풍들은 어둠 주변을 소용돌이치다가 이내 그 안으로 완전히 사라졌지요.


자신들의 마법 에너지들을 기습적으로 뺐겨버리자, 화신들은 하나둘씩 무너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말레키스와 나가쉬는 그 중에서도 가장 악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그림자와 죽음의 마법풍이 이미 오랜 기간 그들의 몸 일부가 되어버린 탓이였지요.

'불멸의 왕'은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는 그대로 쓰러졌고,

리치는 엄청난 당혹감과 공포 속에 자신의 불멸해야될 육신이 점점 풀리며, 처음 비롯되었던 것처럼 먼지로 돌아가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지그마가 아지르의 마법풍을 가지고 버텼지만 이것도 겨우 수 시간에 불과했고,

이내 더한 고통 속에 강제로 분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심지어 히쉬의 힘을 받아들인지 겨우 수 일 밖에 안된 티리온조차도 마치 끈들이 잘린 꼭두각시마냥 땅바닥에 쓰러졌을 정도였지요.

그나마 그는 다른 이들에 비하면 더 빨리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오직 알라리엘만이 물질적 고통을 감수하지 않을 수 있엇습니다.

기란의 힘이 떨어져나가며, 그녀의 세계수 연결망과의 연결고리 또한 그대로 잘려나갔지요.

아델 로렌의 여왕으로 등극한 이래로 처음으로,

알라리엘은 이때껏 불균형을 유지해왔던 세계가 질러오던 고통의 신음성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건 조금 위안이 되는 사실이였지만,

이 급작스러운 분리와 함께 그녀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독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와중에 만프레드는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알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두 눈을 앗아간 어둠의 대폭발은 덤으로 그의 지혜와 인지능력까지도 완전히 날려버린 덕이였습니다.

그리고 이건 마지막 순간 자신들을 택해준 이 멍청이에게 베푸는 카오스 신들의 마지막 작은 선물이였지요.

만프레드는 마치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위 둥둥 떠다니는 작은 유람선마냥 의식이 거행되던 방을 이리저리 비틀비틀 걸어다니며,

마치 어린애마냥 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옹알거리며 폭언과 욕설을 마구 지껄여댔습니다.


앞서 말했듯, 화신들 중에서는 티리온이 가장 먼저 회복해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의식이 망가졌다는 사실이 고통조차도 이겨낼 수 있는 강렬한 분노로 그의 심장을 지폈기 때문이였지요.

사실 왕자는 겔트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잘 몰랐으므로 그에 대해서는 별로 딱히 애도할 것도 없었지만,

그의 형제가 겔트의 짐을 옮겨지려다 결국 최후를 맞이했다는 사실은 끔찍한 마음의 짐으로 다가왔고,

덕분에 세계가 멸망하기 전 마지막 일이 될지언정,

그의 형제를 그토록 비참하게 사라지게끔 만든 단 한 놈에게 복수해야겠다는 결의가 그를 가득 채웠습니다.

만프레드의 갑주가 바윗벽에 이리저리 난잡하게 새겨놓은 긁힌 자국들을 따라,

왕자는 고통조차 감수하며 발걸음을 옮겨 만프레드를 추격해 들어갔습니다.


눈이 멀어있었기에, 뱀파이어는 티리온이 다가오는지조차 몰랐습니다.

만프레드의 견갑을 꼬나쥔 티리온은 그의 몸을 돌린 다음 선팽을 그대로 대머리의 복부에 쑤셔넣고는

그대로 검은 심장이 있는 부위까지 쭉 찢어 올렸습니다.

검이 그대로 쭉 올라와 심장을 가르자, 만프레드는 맥 빠지는듯한 칭얼거리는(rattling) 쉿소리를 토해냈는데,

선팽의 이글거리는 화염이 그의 생살을 태워버리기 시작하자 그 소리는 비참하게 울부짖는 비명소리로 변했습니다.

뱀파이어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며 티리온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떼썼지만,

그의 견갑을 잡고선 검을 배에 쑤셔넣은 왕자의 두 손의 손가락들은 풀릴 줄을 몰랐습니다.

곧 만프레드의 몸 전체가 불타올랐고,

그를 완전히 태워버리고 있는 화염은 티리온의 갑옷 위로 계속해서 무의미하게 흘러내렸습니다.


마치 영원과도 같은, 하지만 실제로는 겨우 수 분도 안되는 순간이 그렇게 지나가며

뱀파이어의 비명도 점점 잦아들었고

화염도 사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티리온은 그제서야 그의 손을 풀었고,

남은 자리에는 불에 타 검게 타들어버려 숯덩어리가 되어버린, 시들어버린 초라한 송장 하나만이 남았습니다.

한때 만프레드 본 칼슈타인이였던 그것은 그나마도 얼마 되지 않아 동굴 바닥에 무너지며 산산조각났지요.

Posted by 스틸리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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