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전, 프라이마크의 죽음'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9.07.21 1만년 전, 프라이마크의 죽음 -6-
  2. 2019.07.20 1만년 전, 프라이마크의 죽음 -5-
  3. 2019.07.19 1만년 전, 프라이마크의 죽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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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ark Imperium


프라이마크의 죽음.

1만년 전.


2장 : 황제의 자존심 호

'군주이시여,' 티엘이 이어서 말했다.


'당신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는 저 안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게 바로 그가 원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헛짓거리는 보기에는 유치하기 그지없지만, 펄그림은 위험한 존재입니다.

저 또한 그가 어떤 인물인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대로 홀로 들어간다면, 그의 손 위에서 놀게 되는 겁니다.

이와 같은 놈의 헛짓거리에 놀아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함께 들어가서, 그를 토벌해야 합니다.'


'나는 홀로 들어가겠다,' 그러나 길리먼의 목소리는 확고했다.


'만약 우리가 함께 들어선다면, 그는 이미 그것을 예측하고 거기에 대한 대응을 세운 상태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후퇴할 수 밖에 없게 되거나, 아니면 다른 공습 부대들이 임무를 성사시키기도 전에 전멸해버리며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가버릴게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내가 놈을 홀로 상대하게 해주거라.

그는 분명히 자만심에 가득 차 있을 것이고, 실용적인 전투 대신 허례허식에 치중하면서 집중력이 떨어질 것이다.

내가 시간을 버는 동안 우리의 다른 형제들이 분명 이 함선을 파괴하는데 성공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는 당신과 싸우기만을 바라고 있는 겁니다!' 티엘이 말했다.


'조금 다르단다.' 길리먼이 이어서 말했다. '그는 힘에서 자신이 '월등'하다고 증명하고 싶은 거란다.'


'그는 당신을 죽이고 말 겁니다, 군주이시여. 부디 선택을 재고해 주십시오!' 티엘이 간곡히 청했다.


허나 길리먼은 아예 고개를 돌리며, 떠오르는 감정을 헬멧 속에 감추었다.


'나는 반드시 놈과 맞서야만 한다.'


'정녕 혼자서 놈을 이길 수 있으리라 믿으시는 겁니까?' 티엘이 물었다. 


'그것은 나도 모르겠구나,' 길리먼이 잠깐 멈춰선 다음 답했다.


티엘은 한탄했다. 그의 헬멧으로부터 탄성이 흘러나왔다.


'실용적인 이유 대신 혹여 배반자 형제와 직접 만나 싸우려는 개인적 욕망이 더 앞선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각하.'


'무슨 의미더냐?'


그 순간 배 외부가 큰 타격이라도 입었는지 크게 요동쳤고, 함내를 감싸던 초자연적인 고요함도 잠깐이나마 깨졌다.


'자부심이 각하의 형제에게 파멸을 안겨주었습니다,' 티엘은 꿋꿋하게 간언했다.


'그와 같이, 자부심은 가장 강한 존재조차도 무너트립니다.

부디 자부심에 빠지지 마시옵소서, 각하.'


'너는 자부심이 없느냐, 나의 아들아?'


'저 또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티엘이 답했다.


'저는 제가 한 명의 울트라마린일 수 있음에, 

그리고 당신이라는 유전적 아버지를 두고 모실 수 있음에, 

그리고 그러한 당신의 곁에서 이토록 오래간 함께 싸울 수 있었음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허나 저는 감히 당신을 사지로 가게끔 허락할 정도로 자부심에 빠질 수는 없었나이다.'


길리먼이 헬멧 아래서 미소지었다. 


'너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에오니드. 언제나 강직하구나.

그래, 나는 네 말대로 자부심이 날 파멸에 빠트리게 만들지 않으마.

여기서 대기하라. 그러나 약속하거니와, 잠시뿐이다.

여기서 내 뒤를 지켜주거라.

그리고 내가 홀로 펄그림을 쓰러트릴 수 없다면,

그 때에는 내 도움 요청에 응하거라. 

그리하여 우리는 놈이 받아 마땅한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안겨줄 것이다.'


'각하,' 티엘이 안도하며 말했다.


'반드시 그리될 것입니다,' 안드로스가 답했다.


그제서야 여전히 내키지 않는 듯했지만, 로버트 길리먼의 아들들은 문들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는 매복 대기 태세를 취하였다.

그리고 프라이마크는 손을 내밀어 양 손바닥을 문짝의 변이된 금속 표면에 대고는 힘있게 밀었다.

프라이마크는 분명 바닥 긁히는 그런 시끄러운 소음이 들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놀랍고 소름끼치게도 문은 무음으로 공허하게 열렸으며

다만 문이 열릴 때마다 안에서부터 혐오스런 냄새의 돌풍이 밀려나올 뿐이였다.


문 안쪽으로 보이는 것은 다만 어둠 뿐이였으며,

사실상 '승리자의 길'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광경이였다.


마침내 길리먼은 헬리오폴리스 내부로 발을 떼었다.

그가 들어서자, 거대한 문은 곧 다시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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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ark Imperium


프라이마크의 죽음.

1만년 전.


2장 : 황제의 자존심 호

스페이스 마린의 정신은 강건하다.

인간에서 초인으로의 변신 과정 간에 개조되어, 수 년간의 훈련 속에 그 어떤 공포에도 버틸 수 있게 단련된다.

또한, 길리먼의 베테랑 전사들은 그들의 프라이마크가 보았던 것들 상당수를 함께 보아왔기에,

그들의 걸음걸이에 불안감이나 공포 따위는 없었다.

마린들의 대형은 이미 전투 대형이였다.

쉴드를 들고 있는 브리쳐 팀들은 진입 지점들 근처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터미네이터 마린들은 분대 단위로 집결해 있었다.

길리먼의 인빅타루스 스제리안 아너 가드 또한 자신들의 주군을 지키기 위한 최적 최효율의 대형을 유지하며 슬랩 방패들을 단단히 쥐고 있었으며,

그들의 도끼들에서 방출되는 분열장들은 어둠 속에서도 은은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길리먼은 음성 신호를 암호화된 광역망으로 바꾸고 말했다.


'우리 쪽은 도착했다. 함내 침투 성공한 각 부대들은 각자 상황 보고를 실시하라.'


처음에 그의 귀에 들리는 것은 함내 각 부분들에 침투한 부하들이 보내는 보고들 대신 소름끼치는 웃음 소리와 비명 소리 뿐이였다.

그러나 곧 그 불협화음 속에서 간신히 쥐어짜듯 말하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프라이마크이시여,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확인했다, 챕터 마스터 루돈,' 길리먼이 말했다.


'수 분간 당신께 신호를 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프라이마크이시여. 현재 오로라 챕터는 문제 없습니다.

저희는 예측보다 최소 수준의 적 저항과 접촉했습니다. 현재 이 지점에는ㅡ' 챕터 마스터의 음성은 대략 1분간 끊겼는데, 끊긴 동안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음성망을 채웠다.


'ㅡ14명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은 시신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전부는 사지가 절단된 형태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저희는 현재 목표 지점을 향해 접근 중에 있습니다.'


'공습부대 '분노'입니다, 프라이마크시여.'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길리먼의 디스플레이 창으로 룬 문자가 떠올랐는데, 그 문자는 디스플레이창의 3D 지도 위에서 20층 갑판 아래 지점에서 표시되고 있었다.

20층 갑판 아래에 위치한 공습부대 '분노'의 음성망 사이로 묵직한 볼터건들의 사격음들과 멜타 무기들 특유의 대기 태우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챕터 마스터 코르보,' 길리먼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이 시대까지 살아남은 '옛 시절'의 소수 베테랑들 중 한 명이였다.


'노바마린 챕터는 3개 지점에서 교전을 수행했습니다, 프라이마크이시여,' 챕터 마스터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적들의 수는 예상보다 더 많았습니다. 목표 지점까지의 도착 시간은 예상 시간보다 대략 12분 더 늦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차후에도 계속해서 보고하게,' 길리먼이 말했다.


현재 길리먼이 지휘하는 부대는 여전히 신중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부하들이 경계 태세를 유지하는 동안, 길리먼은 디스플레이 지도를 통해 다른 나머지 공습 부대들을 확인했다.

현재 오로라 챕터를 제외한 모든 공습 부대들이 대규모 적 병력들과 교전 중이였다.

사실상 함내에는 엠퍼러스 칠드런 병력이 사방에 있다 해도 무방했다. 단 한 군데, 이곳 '승리의 길'만을 제외하고.


'전진한다!' 길리먼이 마침내 명령을 내렸다.

그의 아너 가드 또한 곧바로 방어 대형을 풀고 길리먼과 동일한 보폭으로 전진하며 '황제의 자존심'호를 감싼 어둠 속으로 진입했다.


'아마 이 안에는 아무런 적도 없을 것이다.'


'들키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이건 분명한 함정입니다,' 안드로스가 말했다.


'내 형제는 지금 나를 도발하는 것이다,' 길리먼이 말했다.


'펄그림은 언제나 극적인 연출에 집착했었지,'


'그렇다 하더라도 매복에 항시 대비해야 합니다,' 안드로스가 말했다.


'그럴 필요도 없겠어, 형제,' 티엘이 이어서 말했다.


'이 음울해 빠진 복도는 펄그림의 성격에 맞지 않아.

가장 웅장한 무대가 아니라면 그가 과연 어디에 있을 수 있겠나?

그러니 아마 그는 '헬리오폴리스'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것이네.'


전투 보고들은 계속해서 올라왔으며, 길리먼은 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길리먼은 그가 통솔하는 부하 사령관들의 직속 음성 명령들을 차례대로 계속해서 수신하고 있엇다.

길리먼의 함대가 이 함선을 향해 수많은 포격들을 쏫아붓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여전히 '황제의 자존심' 호는 아주 적은 미동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힘의 철권'호에서 들려오는 보고들에 따르면 이 적함은 상당한 피해를 받았지만,

펄그림의 기함에 과연 무엇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또다시 보고가 들어왔다.두 척의 함선이 현재 서로 교차해서 지나쳤으며,

각 기함들의 호위함들이 서로간에 교전을 펼치면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였다.

와중에 소형선들 중 일부가 결국 격침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지만,

길리먼의 함대는 여전히 잘 싸우고 있었다. 

문제는 숫적 우위에서 밀린다는 것이였고, 이는 길리먼에게 시간이 별로 많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느덧 눈 앞에 언덕만한 크기의 계단이 펼쳐졌고, 2nd와 1st 중대의 전사들은 조심스레 계단들을 올라갔다.

어느덧 대기 중으로 색다른 냄새가 풍기고 있었는데, 그것은 무언가 달콤한 꿀과 향수, 그리고 피가 섞인 그러한 냄새였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기묘하고도 압도적인 사향 향기가 스페이스 마린의 호흡기 그릴들까지 통과하여 흘러들어왔는데,

소름끼치게도 지금 마린들은 모든 호흡 그릴망들을 초진공 대비 상태로 차단해둔 상태였다.


로버트 길리먼이 '승리의 길'을 마지막으로 걸었을 때, 그는 명예로운 손님 신분으로 들어왔었다.

당시 엠퍼러스 칠드런 군단은 이 계단들과 착륙장들에 수백명 단위로 정렬해 있었으며,

찬란한 빛 아래 그들은 길리먼에게 환호성을 보냈었다.

그리고 그의 형제는 길리먼을 따뜻하게 환영했었다.


회상이 끝나자, 약간의 슬픔이 길리먼을 찾아왔다. 어쩌면 이것보다는 나은 상황이 펼쳐졌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결국 회상이 끝나자 그는 어둠 속에 도둑마냥 남겨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계단 위를 올라 몇 걸음 더 걷자, 초자연적인 어둠 속에서 헬리오폴리스로 진입하는 심실이 불연듯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심실 뒤편으로 일명 '불사조의 문'이라 불리는 거대한 문이 마치 동굴 바깥으로 걸어나온 도깨비마냥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리먼은 잠시 전진을 멈추고 대형을 산개할 것을 지시하였다.

다른 공습 부대들에게서 들려오는 보고들은 계속해서 헬멧을 통해 전송되고 있었는데,

지옥에서나 들을 법한 비명소리들과 통곡성들이 제대로 된 전송을 방해하고 있었다.

길리먼은 보고들을 접수함과 동시에 슬픈 감정 속에 펄그림이 '불사조의 문'에 저지른 짓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전쟁 이전의 시절에, 불사조의 문은 예술가가 만든 최고의 걸작으로

그 당시 이 거대한 문을 구성하는 2개의 황동 문짝들에는 펄그림이 왕관을 수여받는 그 순간이 묘사되어 있었었다.

문 위로는 먼저 황제가 서 있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었으며,

그는 조각 속에서 펄그림에게 팔라틴 아퀼라를 수여하고 있었었다.

그 명예를 수여하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존중으로,

이 문 또한 과거에는 그의 아들이 그에게 바치는 헌신의 장면을 함께 묘사하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그 뒷배경으로 그들을 환호하는 수많은 관중들이 조각되어 있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면에서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먼저 웅장했던 조각 예술이 상당 부분 바뀌어 있었다.

매끈했던 황동은 이제 온갖 천박한 상징들을 표현하기 위해 마구 조각되어 있었다.

먼저 황제와 프라이마크, 두 명의 주요 인물상 뒤편에 묘사된 관중들은 미쳐 날뛰는, 그런 추잡하면서 무언가 기원을 알 수 없는 인간 아닌 존재들로 변이되어 있었다.

그리고 작품 또한 전체적으로 들쭉날쭉한 상태로 변해버렸는데,

일부분은 노련한 기술 속에 수정 조각된 반면, 어떤 부분은 그야말로 조잡하기 그지없었으며

그러한 불일치와 무절조가 원래의 조각가가 창조했던 그 심도 있는 예술성을 완전히 망쳐놓고 있었다.


원래 관중들의 눈들은 황제와 프라이마크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섬세히 조각되어 있었지만,

이제 뒤편의 인물들은 그 눈 방향을 현란하게 이리저리 돌리면서 황제와 그의 아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오직 펄그림의 군단만이 황제의 개인 상징을 몸에 지닐 수 있는 허락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아이러니함이 길리먼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펄그림은 오만스럽고, 허식이 심했으며 자만심과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였으나,

그의 자질들은 그러한 결점들을 상회하고도 남는 그런 것이였었다.


원래는 예술 작품이였던 문을 계속 살펴볼 수록 길리먼의 마음은 더욱 더 굳어져갔다.

독수리의 눈들은 완전히 파여져 있엇다.

황제의 머리 부분은 완전히 파여져 있었으며, 

그 자리에는 대신 뼈들과 검게 물든 힘줄들이 마구 섞인 괴상한 무언가가 접착되어 있었다.

펄그림의 얼굴은 스스로 움직이는 은색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는데,

이 마스크 위로는 온갖 표정들이 미묘하게 떠오르고 있었으며

그 표정들이란 하나같이 냉소어린 오만함이 가득한 혐오성 표정들 뿐이였다.

그의 몸 부분 또한 완전히 바뀌어 있었는데,

마치 원래 그런 식으로 조각된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지가 여럿 달린 뱀신의 형상으로 변해져 있었다.

문 위에 조각된 그의 형상이란, 그야말로 야만스러운 신의 모습으로 조각만으로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완전히 변해버린 지금의 펄그림에 비하자면 이 조각은 분명 아무것도 아닐 터였다.

 

'놈은 저 안에 있을 것이다, 기다려라,' 길리먼이 문에 펼쳐진 반달리즘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면서 말했다.

직후 그는 문에서 몸을 돌려 티엘과 안드로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나를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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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ark Imperium


프라이마크의 죽음.

1만년 전.


2장 : 황제의 자존심 호

텔레포트 간에는 항상 찰나이지만, 무언가 깨달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있었다.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그런 어중간한 상태에서 명상을 하게 되는 그런 찰나의 순간.

그 순간들 속에서, 즉 자신의 영혼이 두 세계들에 걸쳐 있는 그 순간에는

길리먼은 자신이 진정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었다.

단지 물질적인 존재가 아닌, 양 차원의 존재임을.

물론 그 찰나의 순간이 끝나고 텔레포트가 완료되어 목적지에 모습을 드러내면 그 감각들은 희미해지고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망상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마치 자신의 본성에 대해 조금만 더 깊게 알고자 하는 용기만 있다면 자신의 창조와 관련된 모든 비밀들에 대한 이해가 눈 앞에 펼쳐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는 그럴 용기가 있었지만, 그 느낌에 현혹되지는 않는다.

타락과 저주는 언제나 그런 욕망 아래 깔려 있었기에.


그렇게 유혹의 순간은 끝났다. 명상의 감각도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찬란한 광휘의 빛이 무지의 공간에서부터 길리먼과 그의 전사들을 끌어내어 현실로 다시 올려놓는다.

빛은 점차 사라지며, 빛 속에 반쯤 시야가 가려졌었던 길리먼과 그의 전사들을 기습의 위험에 노출시킨다.

길리먼은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쏟아질지 모르는 기습에 대비했지만,

그러나 아무런 공격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워프 에너지의 남은 찌꺼기 빛들만이 돌아다닐 뿐이였고,

그나마도 곧 사라지자 이제 함내 침투 부대 주변으로 남은 것이라곤 오직 어둠 뿐이였다.


펄그림의 기함 내부는 행성 지표면의 밤보다도 더 어두운 환경이였다.

허나 길리먼의 헬멧에 내장된 여러 시스템들과 그의 초인적인 두 눈은 우주선의 내부 구조를 입자 단위로 확인하고 있었다.

펄그림의 함내에 펼쳐진 광경 덕분에, 길리먼은 한 1초 동안 자신이 텔레포트에서 실패해서 엠피리온 차원에 던져진건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주변에는 마치 어떤 창의적인 악몽에서 도용한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길리먼은 문득 헤러시 당시를 떠올렸다.

헤러시의 종결 직후 백여년간, 길리먼은 악마들과 본격적으로 싸운 적이 몇 번 있었다.

당시 그는 카오스의 사악한 손길에 의해 변이된 행성들의 표면 위를 직접 걸었으며,

그 곳들에서 소서러들에 의해 만들어진 고깃덩어리의 창문들을 통해 악이 가득한 끝없는 심연의 차원들을 직접 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황제의 자존심 호의 내부도 그와 제법 비슷했다.


의도했던 대로, 길리먼과 그가 직접 지휘하는 함내 침투 부대는 승리의 길(Triumphal Way) 지점에 전송되었다.

이 지점은 황제의 자존심 호를 가로지르는 긴 대복도였는데,

한때 각 군단들에서 찾아온 대규모 챕터 병력들이 이 복도를 거닐면서 펄그림이 거둔 제국의 승리들을 축하하는 행군식을 벌였던 적도 있었지만

그 시절들은 이미 오래 전 끝나버렸고 

이제 이 버려진 복도는 그저 텅 비어 있었다.

다만 그 위에서 울트라마의 전사들만이 마치 청색의 섬마냥 홀로 남겨져 있을 뿐이였다.

길리먼의 인빅타루스 스제리안 전사들이 주변 환경들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장인이 빚은 호위용 방패들과 레가틴 파워 엑스 도끼들로 무장하며 아직까지는 오지 않은 미연의 기습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으나,

일부 전사들이 손에 쥔 아스펙스 검출기들은 윙윙거리는 소리 끝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명쾌한 종소리로 알려주었다.

마린들의 슈트에 장착된 램프들이 작동하며 빛의 웅덩이들을 바닥들에 만들어내었고,

빛은 그야말로 끔찍하게 변해버린 전경을 가감없이 드러내었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티엘이였다.


'승리의 길,' 그가 이어서 말했다. '완전히 변했군요.'


'백여년간의 세월이라면, 악에게는 이렇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지,' 길리먼이 답했다. 


'엠퍼러스 칠드런 군단은 여기까지 타락해버렸군요,' 안드로스가 탄식했다.


길리먼의 '이성의 갑주' 안에 내장된 연산기 시스템들은 길리먼의 관심사들과 위험 요소를 자동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었다.

이를 통해 그는 중요 사항들을 모두 피상적으로 검사하고 있었다.

프라이마크의 유전학적으로 설계된 두뇌는 그야말로 막대한 양의 정보들을 분석할 수 있었는데,

사실 그 분석력이야말로 언제나 길리먼의 특출난 재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바깥의 함대들이 서로간에 교환하는 전투 음성들을 분석하면서 휘하 침투 분대원들에게 조용히 명령들을 하달하며 그들을 산개시키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함내 다른 지역들에서 활동 중인 공습 부대들에게서 오는 확인 신호들을 분석하면서,

똑같은 집중력으로 현재 위치하고 있는 거대 복도의 형태를 분석하고 헬멧 내부의 디스플레이 판으로 출력되는 다중 데이터크리드 검측값들을 읽어나갔다.

곧 그는 분석 결과에 입각해서 일련의 행동 계획들을 입안하여, 그것들을 음성망 및 데이터 전송을 통해 전사들에게 간단명료히 하달하였으나

사실 그러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이 함선 그 자체였다.


승리의 길은 그야말로 목불식견으로 변이되어 있었다.

한때 웅장함이 가득했던 이 곳에 지금 남은 것은 어둠 뿐이였다.

울트라마린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빛은 순식간에 삼켜져서, 흐릿한 은색으로만 보일 뿐이였으며

그렇기에 조명을 비추어봐도 보이는 것은 불확실하게 보이는 흐릿한 부언가들 뿐으로

거리 감각 또한 정확히 판단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가장 어두운 지점들은 말 그대로 그림자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프라이마크는 자신이 알았었던 승리의 길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한때 이 곳에는 가장 뛰어난 인류의 예술 작품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이 넒다란 복도에는 황동으로 만들어진 영웅 동상들이 세워져 있었으며,

28th 원정단 함대의 예술가들이 그린 걸작들이 그 사이 사이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대신으로 끔찍한 흉물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인간 본질을 그야말로 충격적으로 왜곡하여 만들어낸 조각상들과 함께 신성 모독과 외설을 예술로 표현하겠다는 의지 가득한 그림 작품들이 가득 걸려 있었는데,

특히 후자의 경우 알 수 없는 역겨운 안료들을 사용하여 만든 도료들로 칠해져,

두꺼운 곰팡이 깔개 위에 솟아난듯이 고정되어 있었다.

이 새로운 장식품들을 어떻게 세심하게 정리하겠다든가, 혹은 이전 것들을 치우겠다든가 했던 시도 같은 것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옛 장식품들이였던 것으로 보이는 폐품들이 마치 찌꺼기마냥 아무데나 수북히 쌓여져 있었으며,

부셔진 황동상 조각들은 바닥에 널부러진채로 알 수 없는 고기 오물들과 뒤엉켜 있었다.

대리석 벽들에는 기이한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어서, 그 안과 거대한 균열들 사이로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끈적끈적하게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새까만 기둥들은 바닥에서부터 뒤틀려 뽑여져서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그 기둥들은 과거 승리들을 새기는 용도였던 기둥들이였는데

기둥에 적혀 있었어야 할 승리 기록들조차 이제는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문자 범벅들로 변질되어 있었다.

포장 도로는 사방에서 쪼개지고 무너져 있었는데, 심지어 금속 갑판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오직 검기 그지없는 으스스한 구덩이들만이 보였다.


사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침묵'이였다.

진짜 말 그대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이할 정도로 침묵만이 맴돌고 있었다.

함선 외부에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고, 함선 또한 지금 무시무시한 중화력 포격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작동하는 기계들의 포효성들과 폭발음들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었던 '힘의 철권'호와는 다르게,

'황제의 자존심'호는 마치 시간에서 시간 별로 나뉘기라도 한 마냥 고요했다.

복도의 천장 부분의 높은 아마글래스 창문들에서조차 아무런 빛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냥 말 그대로 어둠과 고요 뿐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디선가 불협화음적인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른 방향에서 3여개 정도의 비명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는데, 그 소리들은 위협적일 정도로 가까이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길리먼은 카오스의 주구들이 만들어낸 이보다도 더 노골적인 공포들을 본 적 있었으며, 

그것들 중 일부는 그야말로 대경실색할 규모였지만

이 승리의 길에 있는 것은 그야말로 임박한 파멸로서 이전의 가장 무시무시한 광경들조차 압도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에

길리먼조차 마음이 심란해질 지경이였다.


'긴장을 늦추지 말거라,' 그가 말했다.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 황제의 자존심 호는 이제 더 이상 현실 우주에 머무르고 있지 않으니.'


'맞습니다,' 티엘이 이어서 말했다. '이 장소는 워프의 악취가 풍기는군요.'



Posted by 스틸리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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