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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ark Imperium


프라이마크의 죽음.

1만년 전.


2장 : 황제의 자존심 호

텔레포트 간에는 항상 찰나이지만, 무언가 깨달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있었다.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그런 어중간한 상태에서 명상을 하게 되는 그런 찰나의 순간.

그 순간들 속에서, 즉 자신의 영혼이 두 세계들에 걸쳐 있는 그 순간에는

길리먼은 자신이 진정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었다.

단지 물질적인 존재가 아닌, 양 차원의 존재임을.

물론 그 찰나의 순간이 끝나고 텔레포트가 완료되어 목적지에 모습을 드러내면 그 감각들은 희미해지고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망상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마치 자신의 본성에 대해 조금만 더 깊게 알고자 하는 용기만 있다면 자신의 창조와 관련된 모든 비밀들에 대한 이해가 눈 앞에 펼쳐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는 그럴 용기가 있었지만, 그 느낌에 현혹되지는 않는다.

타락과 저주는 언제나 그런 욕망 아래 깔려 있었기에.


그렇게 유혹의 순간은 끝났다. 명상의 감각도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찬란한 광휘의 빛이 무지의 공간에서부터 길리먼과 그의 전사들을 끌어내어 현실로 다시 올려놓는다.

빛은 점차 사라지며, 빛 속에 반쯤 시야가 가려졌었던 길리먼과 그의 전사들을 기습의 위험에 노출시킨다.

길리먼은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쏟아질지 모르는 기습에 대비했지만,

그러나 아무런 공격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워프 에너지의 남은 찌꺼기 빛들만이 돌아다닐 뿐이였고,

그나마도 곧 사라지자 이제 함내 침투 부대 주변으로 남은 것이라곤 오직 어둠 뿐이였다.


펄그림의 기함 내부는 행성 지표면의 밤보다도 더 어두운 환경이였다.

허나 길리먼의 헬멧에 내장된 여러 시스템들과 그의 초인적인 두 눈은 우주선의 내부 구조를 입자 단위로 확인하고 있었다.

펄그림의 함내에 펼쳐진 광경 덕분에, 길리먼은 한 1초 동안 자신이 텔레포트에서 실패해서 엠피리온 차원에 던져진건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주변에는 마치 어떤 창의적인 악몽에서 도용한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길리먼은 문득 헤러시 당시를 떠올렸다.

헤러시의 종결 직후 백여년간, 길리먼은 악마들과 본격적으로 싸운 적이 몇 번 있었다.

당시 그는 카오스의 사악한 손길에 의해 변이된 행성들의 표면 위를 직접 걸었으며,

그 곳들에서 소서러들에 의해 만들어진 고깃덩어리의 창문들을 통해 악이 가득한 끝없는 심연의 차원들을 직접 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황제의 자존심 호의 내부도 그와 제법 비슷했다.


의도했던 대로, 길리먼과 그가 직접 지휘하는 함내 침투 부대는 승리의 길(Triumphal Way) 지점에 전송되었다.

이 지점은 황제의 자존심 호를 가로지르는 긴 대복도였는데,

한때 각 군단들에서 찾아온 대규모 챕터 병력들이 이 복도를 거닐면서 펄그림이 거둔 제국의 승리들을 축하하는 행군식을 벌였던 적도 있었지만

그 시절들은 이미 오래 전 끝나버렸고 

이제 이 버려진 복도는 그저 텅 비어 있었다.

다만 그 위에서 울트라마의 전사들만이 마치 청색의 섬마냥 홀로 남겨져 있을 뿐이였다.

길리먼의 인빅타루스 스제리안 전사들이 주변 환경들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장인이 빚은 호위용 방패들과 레가틴 파워 엑스 도끼들로 무장하며 아직까지는 오지 않은 미연의 기습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으나,

일부 전사들이 손에 쥔 아스펙스 검출기들은 윙윙거리는 소리 끝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명쾌한 종소리로 알려주었다.

마린들의 슈트에 장착된 램프들이 작동하며 빛의 웅덩이들을 바닥들에 만들어내었고,

빛은 그야말로 끔찍하게 변해버린 전경을 가감없이 드러내었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티엘이였다.


'승리의 길,' 그가 이어서 말했다. '완전히 변했군요.'


'백여년간의 세월이라면, 악에게는 이렇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지,' 길리먼이 답했다. 


'엠퍼러스 칠드런 군단은 여기까지 타락해버렸군요,' 안드로스가 탄식했다.


길리먼의 '이성의 갑주' 안에 내장된 연산기 시스템들은 길리먼의 관심사들과 위험 요소를 자동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었다.

이를 통해 그는 중요 사항들을 모두 피상적으로 검사하고 있었다.

프라이마크의 유전학적으로 설계된 두뇌는 그야말로 막대한 양의 정보들을 분석할 수 있었는데,

사실 그 분석력이야말로 언제나 길리먼의 특출난 재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바깥의 함대들이 서로간에 교환하는 전투 음성들을 분석하면서 휘하 침투 분대원들에게 조용히 명령들을 하달하며 그들을 산개시키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함내 다른 지역들에서 활동 중인 공습 부대들에게서 오는 확인 신호들을 분석하면서,

똑같은 집중력으로 현재 위치하고 있는 거대 복도의 형태를 분석하고 헬멧 내부의 디스플레이 판으로 출력되는 다중 데이터크리드 검측값들을 읽어나갔다.

곧 그는 분석 결과에 입각해서 일련의 행동 계획들을 입안하여, 그것들을 음성망 및 데이터 전송을 통해 전사들에게 간단명료히 하달하였으나

사실 그러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이 함선 그 자체였다.


승리의 길은 그야말로 목불식견으로 변이되어 있었다.

한때 웅장함이 가득했던 이 곳에 지금 남은 것은 어둠 뿐이였다.

울트라마린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빛은 순식간에 삼켜져서, 흐릿한 은색으로만 보일 뿐이였으며

그렇기에 조명을 비추어봐도 보이는 것은 불확실하게 보이는 흐릿한 부언가들 뿐으로

거리 감각 또한 정확히 판단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가장 어두운 지점들은 말 그대로 그림자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프라이마크는 자신이 알았었던 승리의 길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한때 이 곳에는 가장 뛰어난 인류의 예술 작품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이 넒다란 복도에는 황동으로 만들어진 영웅 동상들이 세워져 있었으며,

28th 원정단 함대의 예술가들이 그린 걸작들이 그 사이 사이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대신으로 끔찍한 흉물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인간 본질을 그야말로 충격적으로 왜곡하여 만들어낸 조각상들과 함께 신성 모독과 외설을 예술로 표현하겠다는 의지 가득한 그림 작품들이 가득 걸려 있었는데,

특히 후자의 경우 알 수 없는 역겨운 안료들을 사용하여 만든 도료들로 칠해져,

두꺼운 곰팡이 깔개 위에 솟아난듯이 고정되어 있었다.

이 새로운 장식품들을 어떻게 세심하게 정리하겠다든가, 혹은 이전 것들을 치우겠다든가 했던 시도 같은 것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옛 장식품들이였던 것으로 보이는 폐품들이 마치 찌꺼기마냥 아무데나 수북히 쌓여져 있었으며,

부셔진 황동상 조각들은 바닥에 널부러진채로 알 수 없는 고기 오물들과 뒤엉켜 있었다.

대리석 벽들에는 기이한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어서, 그 안과 거대한 균열들 사이로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끈적끈적하게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새까만 기둥들은 바닥에서부터 뒤틀려 뽑여져서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그 기둥들은 과거 승리들을 새기는 용도였던 기둥들이였는데

기둥에 적혀 있었어야 할 승리 기록들조차 이제는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문자 범벅들로 변질되어 있었다.

포장 도로는 사방에서 쪼개지고 무너져 있었는데, 심지어 금속 갑판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오직 검기 그지없는 으스스한 구덩이들만이 보였다.


사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침묵'이였다.

진짜 말 그대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이할 정도로 침묵만이 맴돌고 있었다.

함선 외부에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고, 함선 또한 지금 무시무시한 중화력 포격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작동하는 기계들의 포효성들과 폭발음들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었던 '힘의 철권'호와는 다르게,

'황제의 자존심'호는 마치 시간에서 시간 별로 나뉘기라도 한 마냥 고요했다.

복도의 천장 부분의 높은 아마글래스 창문들에서조차 아무런 빛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냥 말 그대로 어둠과 고요 뿐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디선가 불협화음적인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른 방향에서 3여개 정도의 비명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는데, 그 소리들은 위협적일 정도로 가까이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길리먼은 카오스의 주구들이 만들어낸 이보다도 더 노골적인 공포들을 본 적 있었으며, 

그것들 중 일부는 그야말로 대경실색할 규모였지만

이 승리의 길에 있는 것은 그야말로 임박한 파멸로서 이전의 가장 무시무시한 광경들조차 압도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에

길리먼조차 마음이 심란해질 지경이였다.


'긴장을 늦추지 말거라,' 그가 말했다.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 황제의 자존심 호는 이제 더 이상 현실 우주에 머무르고 있지 않으니.'


'맞습니다,' 티엘이 이어서 말했다. '이 장소는 워프의 악취가 풍기는군요.'



Posted by 스틸리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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