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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슬리브 대보름(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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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트도르프에서 끔찍한 사고와 악몽 같은 역경을 견뎌내고, 나와 내 친구는 길을 찾을 겨를도 없이 무작정으로 남쪽으로 향하였다.
"우리는 찾을 수 있는 모든 교통 수단에 메달았다: 역마차, 동네 우마차, 짐마차, 이것들 마저 없으면 자신의 발에 의존하였다.
"나에게는 참으로 험난하고 두려운 시기였다. 골목에 들이설 때마다 나는 구속당해서 감옥살이나 처형당할까봐 무서워했다. 난 모든 여관에는 보안관이 지키고 있고, 모든 덤불 뒤에는 현상금 사냥꾼이 웅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위안거리인건 트롤슬레이어는 수상한 낌새를 느낄 때마다 거리낌없이 나한테 얘기하였다.
"그때의 나만큼이나 제국의 법치 기관에 무식한 사람이라면, 우리 둘 같은 현상범를 잡기 위해 온나라의 수사 기관들이 들쑤시며 다니고 있다고 착각했으리라.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법률의 이행이 얼마나 미약하고 무작위적인지 몰랐다. 솔직히 지금와서 말하지만, 그때 보안관이나 현상금 사냥꾼들이 정말로 매복해 있었더라면 차라리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이 내 고향의 변두리에 득실거리는 사악한 존재를 그나마 줄어들게 했더라면 말이다.
"여튼 그러던 우리가 남쪽으로 가는 역마차에 몸을 실은 어두운 저녁에, 나는 비로소 사악한 존재의 심각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날 밤은 마침 우리의 달력에서 가장 불길한 때였기도 하다......"
--나와 고트렉의 여행기, 제2권
저자: 펠릭스 예거(알트도르프 출판사, 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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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 마부들과 인간 여자들은 엿이나 먹어라," 고트렉 거니슨은 투덜거리면서도 드워프어 욕설을 내뱉었다.
"어으, 정말 그렇게까지 이졸데 여사를 모욕해야 돼?"펠릭스 예거가 짜증내며 말했다. "적어도 우리한테 쏘지 않은 것만으로 얼마나 행운이야. 물론 모르슬리브 대보름 밤에 길바닥에 버려지는건 '행운'이라고 자축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우린 분명 운송비를 냈어, 그 여자처럼 안에 앉을 권리가 있다고. 그 마부들은 계집같은 겁보 새끼들이다." 고트렉이 으르렁거렸다. "걔네들은 내가 맞다이 뜨자니까 거절하더구만. 난 칼빵 맞고 죽는 것엔 불만 없지만, 총알 구멍 뚫려서 죽는건 트롤슬레이어에 맞지 않아서 관뒀다." 펠릭스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의 길동무의 악감정이 불타오르고 있다는걸 알아채린 것이다.
적어도 현재로선 고트렉과 펠릭스에게 더 큰 걱정거리가 있다. 일몰이 다가오며 안개가 자욱한 숲이 핏빛에 물들어졌다.
길쭉한 그림자가 정신없이 춤추며, 그늘 아래의 으스스한 장면들을 뇌리속으로 휘저어 넣는다.
펠릭스는 망토의 끝자락으로 코를 슬쩍 닦았다. 그리고 서든란드제 모피옷을 더 빡빡하게 싸메었다.
다시 그는 코를 훌쩍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모르슬리브와 만슬리브가 벌써 뚜렷하게 보이는 하늘을 보았다. 모르슬리브는 이미 희미하게나마 초록색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결코 좋은 징조는 아니였다.
"나 약간 열이 나는거 같아,"펠릭스가 말했다. 트롤슬레이어는 그를 올려다 보더니 씨익 웃었다. 석양 아래 그의 코와 귓불 사이에 걸린 사슬은 꼭마치 튀겨나가는 핏자국 같아 보였다.
"니네들은 정말로 나약한 종족이구먼," 고트렉이 말한다. "오늘 같은 밤에 나는 전투열이 나지. 벌써 내 머리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군."
갑자기 그는 휙 돌아서서 어두운 숲 속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덤벼, 비스트맨 새끼야!" 하며 그는 우렁차게 이어 내질렀다. "너한테 선물을 주마."
이윽고 그는 큰소리로 웃다가 엄지 손가락을 그의 도끼날에 그었다.
펠릭스는 고트렉의 손가락에서 피가 나온걸 보았다. 고트렉은 엄지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다.
"지그마 보우하사, 제발 좀 조용히 해!" 펠릭스가 쉬잇거리면서 경고했다. "오늘 같은 밤에 뭐가 튀어나올지 누가 알겠어?"
고트렉이 그를 노려다 보았다. 펠릭스는 그의 눈동자 속에서 폭력에 대한 열망으로 이글거림을 알아차렸다. 본능적이게 펠릭스는 손을 칼자루에 가깝게 당겼다.
"인간, 나한테 명령질 따위 하지 마! 난 유서깊은 종족의 일원이며 오로지 산의 왕들의 명을 받든다! 지금은 떠돌이지만."
펠릭스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예절을 차렸다. 아무리 그가 학교에서 뛰어난 검술 교육을 받았고, 그의 얼굴에 남은 흉터는 그가 학창시절에 싸움을 꽤나 했다는 점을 입증하며, 심지어 그는 누군가를 살해하여 보장받은 미래를 물거품으로 만든 적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그는 자기가 트롤슬레이어의 상대가 아니라고 자각하고 있다. 비록 고트렉의 비죽배죽 뻗친 머리끝이 간신히 그의 가슴팍에 닿을까 말까 하지만, 고트렉의 체중은 그를 능가하며 온몸이 근육 덩어리였다. 거기에다가 펠릭스는 고트렉이 그 도끼를 휘두르는 모습을 목도한 바가 있다.
드워프는 펠릭스가 고개 숙인 것을 사죄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어두컴컴한 숲 속으로 돌아섰다. "나와라!" 그리고 다시 고함쳤다. "오늘밤에 뭔 사악한 것들이 싸돌아다녀도 내 알 바 아니다. 도전을 받아들이지." 이렇게 드워프는 자신의 분노를 최고조로 이끌어 가고 있었다. 펠릭스가 고트렉과 지내는 동안 알아낸 점에 따르면, 트롤슬레이어가 한동안 잠자코 있으면 곧 화를 터뜨리며 어리광을 부린다는 징조이다. 사실 이러한 성격도 고트렉의 다른 특징들과 아울러 펠릭스의 관심을 끄는 요소이다.
펠릭스는 고트렉이 속죄를 위해 슬레이어 되었다는 것은 알고있다: 그는 무시무시한 괴물에 맞서 대등하지 않은 전투에서 죽겠다는 서약을 맺었다. 이렇게 보니 그는 거의 정신병동의 문턱에 다다른 셈이다 ―― 서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점을 뺴면.
어쩌면말야, 펠릭스는 생각했다. 고향의 공동체에서 추방되고, 심지어 같은 종족도 아닌 자와 동행하게 되면, 나도 미치광이가 되겠지. 이렇게 생각한 그는 미쳐버린 드워프와 일종의 동료의식을 느꼈다. 펠릭스는 고향에서 민중들에게 쫓겨나는 기분이 어떤건지 몸소 체험한 적이 있다. 볼프강 크라스너와의 결투는 제법 큰 뉴스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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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가 감상에 빠지고 있을 때, 드워프는 아예 동귀어진이라도 작정한 듯 했다. 이윽고 펠릭스는 다시 길을 저벅저벅 걷기 시작했고, 가끔마다 영롱한 빛을 내는 만월의 모르슬리브를 근심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등 뒤에서는 여전히 고트렉이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너네들 중에 전사라도 없는거냐? 와서 내 도끼를 달래줘라. 도끼가 목 마르데잖아!" 아, 어느 미친 사람이 모르슬리브 대보름, 수수께끼의 밤에 숲속 가장 어두운 곳에서 운명과 어둠의 힘을 도발한단 말인가, 하고 펠릭스는 생각했다.
그리하여 잠시 걸걸하고 거친 산맥 드워프어가 울렸다. 그리고 다시 라이크슈필(제국 공식 언어)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니놈들의 대장을 보내와라!"
다시 침묵이 숲을 감쌌다. 안개에 축축하게 젖은 눈썹에서 물방울이 흘러내리더니, 드디어 ――
저만치 먼 곳에서, 질주하는 말이 내는 소리가 숲의 정막을 찢겨냈다.
저 작자가 뭘 한거야? 펠릭스는 마음속으로 끙끙거렸다. 그가 고대의 신령을 도발한 건가? 그들이 악마 기수를 보내 우리를 저승으로 보내려는가?
펠릭스는 길에서 거리를 두게 움직였다. 그리고 머리를 신경질적이게 흔들어 얼굴에 내려앉은 축축한 나뭇잎들을 떨쳐내었다. 불쾌하게도 이 나뭇잎들은 왠지 죽은 자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그와중에 발굽이 대지를 박차는 소리가 점점더 뚜렷해지더니, 숲속의 외딴 길을 쏜살같이 따라 달려오는걸 알 수 있었다.
단연코, 초자연적 존재만이 오늘같은 야밤에 발바닥에 불 지필 듯한 기세로 누비고다닐 수 있으리라. 펠릭스는 덜덜 떠는 손으로 칼을 뽑았다.
고트렉을 따라다닌건 정말 바보같은 생각이었어, 하고 펠릭스는 후회했다. 덕분에 고트렉을 위한 시는 물 건너 가는군. 이제 쩌렁쩌렁 울리는 말 울음소리, 공기를 가르는 채찍 소리, 세차게 길을 짓눌르는 바퀴의 소음도 들리기 시작했다.
“좋아!” 고트렉이 함성이 길을 따라 메아리친다. “-좋아!” 그리고 엄청난 울음소리 함께 거구의 흑마 4필이 칠흑의 마차를 끌며 매서운 기세로 안개를 해치고 나왔다. 펠릭스는 마차의 바퀴가 덜컹거리면서 펄쩍 뛰어오르는 것과 시커먼 망토를 덮은 마부를 어렴풋이 인식해냈다. 그리고 펠릭스는 몸을 덤불 뒤로 숨겼다.
그리고 걸음소리가 들리더니――펠릭스가 숨고 있던 덤불이 옆으로 휙하고 내팽겨졌다.
고트렉이었다. 다행중에 불행인건 그가 더욱더 성나고 야만스럽게 보였다는 것이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문신을 새긴 몸채는 진흙에 뒤범벅되고 몸에 걸친 가죽 조끼는 헝겊 조각이 되버렸다.
“그 빌어먹을 스노틀링-성애자(주2)가 날 깔아뭉갤려고!” 고트렉이 발악을 해댔다. “그 새끼들을 쫓아가자!” 그러더니 휙 돌아서서 바퀴자국을 따라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고트렉이 카잘리드로 흥겹게 노래를 부르는 것을 견뎌야만 했다.
그렇게 보겐하펜 대로를 따라 무작정 검은 마차를 추적하다가, 일행은 여관 “우뚝돌”을 발견했다. 이 때가 그 때라 당연하게도 창문은 불빛 한 줄기도 새나가지 않게 닫혀있었다. 무심코 지나가려던 그들을 마굿간에서 새어나온 히힝거리는 소리가 만류한다. 둘은 마굿간을 수색하여 마차가 없다는 것, 흑마는 없다는 것, 오직 조랑말이랑 상인의 마차 만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마차를 놓친거 같아. 우선 오늘밤을 보낼 잠자리를 찾자.” 근심어린 눈빛으로 모르슬리브를 힐끗 보고, 펠릭스는 조심스레 의견를 내보였다. 이제 불길한 녹색 달은 더욱 강하게 밤하늘을 비추고 있다. “난 이 사악한 빛 아래 바람을 쐴 기분이 없어.”
“허약하군, 인간. 게다가 겁이 많아.”
“어쩌면 술도 있을지 몰라.”
“따져보니 가끔 너의 의견도 합리적일 때가 있군. 이번만큼은 기꺼이, 인간의 술은 약간 묽어서 탈이지만.”
“기꺼이, 말이지.”펠릭스의 대꾸에 비꼬임이 섞인 것을 고트렉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관은 보루처럼 다져지지 않았지만 제법 두꺼운 외벽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드디어 찾아낸 문은 가로막혀 있었다. 인내가 고갈된 고트렉이 도끼의 손잡이로 문짝을 쾅쾅 두드려도 묵묵무답이었다.
“안에 인간이 있어, 맡을 수 있단 말이야,” 고트렉이 불평하였다. 펠릭스는 그저 고트렉이 어떻게 악취를 풍기면서도 정교하게 냄새를 맡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고트렉은 그의 동물 지방으로 모양을 세운 붉은 머리카락을 감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저들도 어쩔수 없이 저러는거야. 마녀나 악마추종자가 아닌 한 누구도 모르슬리브 대보름의 밤에 돌아다니지 않다고.”
“그 시꺼먼 마차는 잘도 달리더구만.” 고트렉이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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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착해 보이지 않았잖아. 창문들도 가려지고, 마차에 어떠한 표식도 새겨지지 않았어.”
“글쎄다, 난 너무 목말라서 이것에 관해 더이상 말하기 싫군. 여봐, 문을 열지 않으면 도끼로 문을 찍겠다!”
펠릭스는 문 뒤에 인기척을 느꼈다. 귀를 문에 가까이 대자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와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도끼로 너의 머리통을 장작 패듯이 뽀개버리기 전에 문에서 떨어져, 인간.” 고트렉이 펠릭스에게 경고했다.
“잠깐만, 내가 말로 해결할게: 어이 안쪽에 있는 이여! 문을 여시게나! 내 친구는 엄청 무지막지한 도끼와 엄청 조그마한 인내심의 소유자라네. 그가 말 한대로 하는 것이 그대가 문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네.”
“염병할의 ’조그마한’은 뭔 의미지?” 고트렉은 특정 단어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문 뒤에서 떨린 목소리로 누군가 소리쳤다.”지-지그마의 이름으로, 꺼즈그라, 구렁텅이의 악마 땅개들아!”
“그래, 염병할,” 고트렉이 단호하게 말하였다. “이제 못 참아.”
그는 도끼를 들어올려 내리찍을 준비하였다. 펠릭스는 도끼날에 박힌 룬들이 모르슬리브 아래 번쩍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펠릭스는 더욱더 서둘렀다.
“지그마의 이름으로!”펠릭스는 문을 향해 외쳤다. “우리를 버려두면 안될걸세. 우린 정말로 그저 지친 나그네들 뿐이라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도끼가 문짝에 쑤셔박혔다. 나뭇조각들이 터져나왔다. 고트렉은 펠릭스를 쳐다보더니 듬성듬성 자란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하고 웃었다.
“부실하구만, 이래서 인간들은.” 고트렉이 말했다.
“열 수 있는 문이 있을 때 문을 열어주는게 좋을걸세,”펠릭스가 다시 외쳤다.
“이봐 잠깐,” 떨리는 목소리로 문 저편의 사람이 말했다. “이 문 땜시 목수장이 쥬르펜이 내헌테 5크라운이나 뜯어묵읏단말여.” 이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호리호리한 사내가 그들을 맞이하였다. 왠지모르게 그의 표정은 수심이 가득 차 보였고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얼굴을 드리웠다. 사내는 몽둥이를 들고 있었고 뒤에 있는 노부인은 이글거리는 촛불을 담은 촛대를 들고 있었다.
“거친 행동을 할 필요는 없을겁니다, 우리는 밤을 보낼 침대만 있으면 되니까요.”펠릭스가 말했다.
“그리고 술도.”드워프가 덧붙였다.
“물론 술도 제공해주신다면 감사합니다.”펠릭스도 이에 동의하였다.
“술은 많이 준비해주이소.”고트렉이 이렇게 말하자 펠릭스는 주인장을 향해 어쩔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슥했다.
여관의 공동 공간은 조금 작았다. 술을 마시는 긴 탁상은 나무통 두개 위에 긴 널빤지를 이어서 만든 것이고, 저쪽 구석에는 무장한 상인 3명이 경계하는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각자의 단도를 꺼내들고 있었다. 펠릭스는, 비록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관주인은 일행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여닫이를 닫았다. “지불은 어떻게 하려는지요, 학자 나으리?” 안절부절하게 여관주인이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펠릭스는 그의 결후가 목에서 위아래로 고동치는 것을 보고, 대답했다.
“난 교수가 아닙니다, 시인이죠.” 한편으론 가벼운 주머니를 뒤지면서 금화의 갯수를 세며, “돈은 지불할 수 있으니 걱정마시죠.”
“먹을거,” 고트렉이 부추킨다. ”마실거.”
그때 노부인이 갑자기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펠릭스는 그녀를 휘둥그레 쳐다보았다.
“노파가 치매기가 있나봐,”고트렉이 놀라며 말하였다.
여관주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의 건터가 실종되고 나서 온종일 저 모양이읍죠.”
“술 좀 갖다줄 사람 없는가,”고트렉이 눈치없이 말하였다. 여관주인이 술을 가지러 가자 펠릭스는 상인들의 자리에 합석했다. 애석하게 그들은 그를 경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혹시 4마리의 꺼먼 말이 끄는 마차를 목격한 사람 있는가?”고트렉이 여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 검은 마차를 본 적이 있소?”상인 한명이 두려움이 담긴 어조로 반문했다.
“너무 가까이 봐서 그 제기랄 것에 깔려죽을 뻔 했구만,” 행상인 하나가 헉하고 숨을 죽이고, 여관주인이 국자를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관주인은 천천히 주워올려 다시 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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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라도 건진게 어디오,”가장 뚱뚱하고 가장 부유해 보이는 행상인이 말하기 시작했다. “어떤이들은 그 마차는 악마가 몰고 다니는 마차라고 한다오. 내가 들은 바로는 매년 모르슬리브의 대보름에 그 마차는 필시 이곳을 지나가는데. 흑석의 고리에서 희생으로 바쳐질 알트도르프의 미아들을 싣고 간다는 소문도 있소.”
고트렉은 흥미로운 듯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다만 펠릭스만은 사태가 이렇게 심각해지는게 영 석연치 않았다.”아주 좋은 전설 이야기였습니다.”펠릭스가 말하였다.
“저건 생시인뎁슈. 나으리.”여관주인이 외쳤다.”해마다 우리네는 그 마차가 쾅쾅거리면서 저 앞을 쏴악 지나가는걸 들으는뎁슈. 2년 전인가 우리 애 건터가 밖을 보다가 그걸 봤다는디 시커먼 수레라고 했읍죠. 마치 아까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말입네더.” 건터의 이름이 나오자 다시 노부인은 울음을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 여관주인은 스튜와 큰 술잔 두개를 들고 왔다.
“내 길동무한테도 술을,”고트렉의 주문을 받고 주인장은 다시 분주히 몸을 움직였다.
“건터가 누구죠?”펠릭스가 돌아와서 물어봤다. 하지만 이는 노부인의 통곡을 부추키는 효과 밖에 없었다.
“술 더 주문이오,”고트렉이 다시 말하자 주인장은 텅빈 술통을 보면서 충격에 빠졌다.
“내거 마셔,”펠릭스가 흔쾌히 술잔을 내줬다. “그럼, 주인장 양반, 건터가 누구인지 알려주실 수 있는지요?”
“그리고 노파는 건터라는 말을 들으면 울어야 하는 저주라도 받았는가?”고트렉이 잔을 비우고 입을 닦으며 물었다.
“건터는 우리네 아들내미이읍죠. 점심 묵고 장작 좀 패러 나갔다는디에, 돌아오지 못했습죠.”
“건, 건터는, 참, 참 착한 애였어요.” 노부인이 훌쩍이며 말하였다.”우리 아,아들 없이 어,으떻게 살아요흐흑―”
“그냥 숲에서 길잃을 수도?”
“고건 아닐겁니다요,”여관주인이 말했다. “건터 얘는 내가 내 손에 있는 탈자락을 아는 만큼 숲에 훤하는데유. 얘가 몇 시간 전에 진작 돌아와부렸해야 하는디, 마녀들이 얘를 구워삶으러 데려간게 아닌가합니다요.”
“롯트 하우프만의 영애, 잉그리드처럼 말이죠.” 뚱뚱한 행상인이 아는척을 했다. 여관주인은 더러운 것을 본 듯이 그를 쳐다본다.
“내 며늘감에 관한 얘기는 듣기 싫은뎁슈,”여관주인이 나지막하게 말대꾸를 했다.
“말해보게.”고트렉이 제촉하자 뚱뚱한 남자가 고맙다는 듯이 말했다.
“작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죠, 하츠로흐에서. 길을 따라 쭉 가면 나옵니다. 현숙한 하우프만 부인이 숫처녀 딸 잉그리드의 방을 들어갔다고 합니다. 뭔가 폭발음이 들렸다고 해서요. 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죠. 여기처럼 잠긴 집의 침대에서 말이죠. 보나마나 누가 마법을 부려 끄집어 낸거죠. 다음날까지도 통곡과 오열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잉그리드를 찾았습니다. 다만 곳곳에 멍이 들고 끔찍한 상태였죠.”
말을 마치고 상인은 그들의 반응이라도 살펴보는 듯 주위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나요?" 침묵을 깨고, 펠릭스가 물어봤다.
"당연히 물어봤죠. 잉그리드 말로는 숲 속에 사는 마귀 같은 것에 흑석의 고리로 납치됐다고 합니다. 보니 거기에 종교 집회 같은게 열리고 있었답니다. 사악한 생물들의 집회 말이죠. 그들은 잉그리드를 제단으로 끌고가 인신공양을 할 모양인 것 같았는데, 잉그리드 아가씨가 자신을 잡고있는 손아귀를 애써 뿌리치고 신성한 지그마의 존함을 외쳤답니다. 그러자 흉물들이 혼란에 빠져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잠시 뒤 그것들이 다시 추격해 왔지만 그녀를 따라잡지 못한 모양입니다."
"거 운이 되게 좋았구만." 이야기가 끝나자 고트렉이 냉담하게 평가를 내렸다.
"저희를 조롱하고 싶으면 마음껏 하시지요, 선생. 그래도 저희는 그 집회가 열린 곳을 기어코 찾아냈는데 온갖 것들의 자취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인간, 짐승, 그리고 갈라진 발굽을 가진 악마들의 발자국 말입니다. 그리고 갓 한살도 안돼 보이는 아기가 제단 위에 바쳐졌었습니다. 정말 도살된 돼지처럼 처참히 살해되었더군요."
"발굽 달린 악마라?"고트렉이 이렇게 되묻자 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펠릭스는 고트렉의 호기심에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알트도르프의 모든 금덩이를 준다 하더라도 그곳에 가지는 않을 겁니다." 행상인이 말했다. "절대로요."
"그럼 영웅에 딱 맞는 일이군," 고트렉은 말하며 의미심장한 눈길을 펠릭스에게 쏘아보냈다.
충격에 빠진 펠릭스는 고트렉에게 항의했다. "설마 거기 가려는 건 아니겠지――"
"저주받은 밤에 악마들을 때려잡다, 슬레이어다운 일이지 않나? 아마 위대한 죽음일거야!"
"우으으, 멍청한 죽음일거야." 펠릭스가 툴툴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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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뭔 말 했어?"
"아냐, 아무것도."
"너도 당연히 올 거지?" 갑자기 고트렉이 무서운 발언을 했다. 다시 그가 엄지 손가락을 도끼날에 그었다. 피가 흘렀다.
펠릭스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맹세를 했으면 지켜야지."
그 말을 듣고 싱글벙글해진 드워프가 등골을 산산조각 내려는 듯이 펠릭스의 등을 철썩 쳤다.
"가끔 말이야 인간, 너의 혈관에 드워프의 피가 흐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니까. 물론 옛 종족이 그런 결혼에 동의할 리가 없겠지만." 그리고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펠릭스는 중얼거리며 드워프의 등을 노려보았다.
펠릭스는 자신의 갑옷을 꺼내기 위해 한동안 배낭을 낑낑거리며 뒤적이다가, 여관주인 부부와 행상인들이 자신을 멍하니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펠릭스가 동족들의 경외심 어린 눈길을 받던 사이에, 고트렉은 불 옆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드워프어로 흥얼거렸다.
"진짜로 가려는 거요?" 뚱뚱한 행상인이 속삭이며 물어오자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이유라도……?"
"제 생명의 은인이죠. 그에게 큰 신세를 졌어요." 펠릭스는 고트렉이 어떻게 자신을 구했는지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인간이 제국 기사단의 말발굽에 깔리기 일보직전에 끄집어냈지."고트렉이 동네방네 소문 내려고 작정했는지 큰소리로 폭로했다.
펠릭스는 하마터면 욕설을 내뱉을 뻔 했다. 아냐, 이 드워프는 야수의 청력과 야수의 뇌를 두루 가졌어, 라고 생각하며 펠릭스는 다시 갑옷 꺼내기에 매달렸다.
"그래. 여기 이 인간이 황제한테 의견이 있는지 탄원을 하면서 시위를 벌이는거야. 이를 카를 프란츠는 조금 신경질적이게 대응 했을 뿐이고, 기병 돌격 명령 말이야." 이 말을 듣자 행상인들이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반동분자다,"누군가 속삭였다.
펠릭스는 자신의 얼굴이 상기되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국민들의 피땀을 짜는 불공정한 세금이었어요. 창문세라고 아시나요? 창문 하나마다 은을 거두는 세금입니다. 뭐가 불공정 하냐고요? 왜냐하면 돈 많은 사람들은 벽돌로 창문을 틀어막는데 가난한 자들은 제국 병사들이 창문을 부수고 들어와 세금을 뜯어가는 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에요. 이건 당연히 항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동분자를 잡으면 상을 준다던데,"행상인이 말했다. "아주 큰 상을." 펠릭스는 그를 노려보았다. "아, 제국 기사들은 제 동료의 상대도 되지 못했다는 점을 안 알려드렸군요," 펠릭스가 말했다. "완전히 아비규환이었죠! 머리, 다리, 팔뚝, 온통 사발팔방에 흩날렸어요. 제 친구는 시체들의 산 위에 서있었더군요."
"근데 궁수를 불렀지 말이야," 고트렉이 덧붙였다. "그래서 뒷골목으로 빠져나가야 했지. 거기서 버텨봐야 개죽음이니까."
뚱뚱한 행상인은 그의 동료와 고트렉을 번갈아 보며 비교하다가 말했다. "사리에 밝은 자는 정치와 거리를 두는 법이죠." 보상에 관한 말을 꺼낸 상인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는 다시 펠릭스를 보면서 말했다. "별다른 뜻은 없을 겁니다, 시인 선생."
"그러리라 믿습니다,"펠릭스가 말했다. "그리고 지당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반동이든 무엇이든요," 노부인이 말했다. "지그마가 당신을 축복하리니, 제발 우리 어린 건터를 데려와 주세요."
"우리 아들내미 어리지 않어, 리세," 여관주인이 말했다. "당당한 사나이부랑께. 여튼, 부디 제 아들내미를 델고 와주십쇼. 이 늙다구리는 젊은놈이 장작도 패줘야 하는뎌, 편자도 박아주고, 술통도 날라주고――"
"아버님의 사연에 저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펠릭스가 노인의 끝도 없는 하소연을 딱 자르고 가죽 모자를 머리에 푹푹 눌렀다.
고트렉이 다가와서 펠릭스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육중한 주먹으로 펠릭스의 가슴팍을 툭툭 쳤다. "갑옷은 여자애나 여자애 같은 엘프놈들이나 입는 거야."
"아니, 난 입고 있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고트렉. 내가 서약한 것처럼 너의 이야기를 기억하기 위해, 난 반드시 살아남아야 해."
"좋은 지적이야, 인간. 그리고 서약 내용은 그 뿐만이 아니란 점도 명심해." 말을 마치고 고트렉은 여관주인에게 돌아섰다."그 흑석의 고리로 가는 길 좀 알려줄 수 있겠나?"
주1
모르슬리브 대보름: 카오스 달 모르슬리브는 한 해에 2번의 만월이 있다. 하나는 제국어로 게하임니스나흐트(Geheimnisnacht), 다른 하나는 핵젠스나흐트(Hexensnacht)라고 불린다. 이중 게하임니스나흐트에 모르슬리브가 가장 가까워져 영향이 더 강하다고 여겨진다. 모르슬리프의 공전 궤도는 규칙이 없기에 해마다 모르슬리브 대보름 날짜는 바뀐다. 제국 밖에 다른 지역에서는 겨울 전야(브레토니아), 황혼 물결(엘프), 아르'우즈쿨(드워프)라고도 불린다.
주2
스노틀링-성애자: 원문은 "스노틀링 애무하는 사람"이다. 보나마나 드워프식 욕설.
ps. 이건 제가 번역한건 아니고 햄갤에 올라온 단편 소설입니다. 즐감하세여~출처는 위에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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