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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Supplement - Raven guard


레이븐 가드의 시작


첫 시작부터, 훗날 레이븐 가드로 거듭나게 될 XIX 군단은 기밀 전술에 특기를 보여왔습니다.

코락스의 자손들은 전쟁 이전에 투입되어, 사보타지와 잠입을 통해 적을 약화시켜왔지요.

다수의 적들은 군단의 발톱들이 이미 목구멍에 드리워진 이후에야 그들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으며,

전쟁을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해 버렸습니다.


초기 지구 통합 전쟁 시기와 이후 대성전 초기 XIX 군단의 업적과 기여에 대해서는 대부분 비밀로 남아 있는데,

이는 일단 군단 스스로가 자신들이 거둔 승리들에 대해 크게 떠벌리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한 당시와 연관된 기록들도 대부분 불안정하여

그나마 XIX 군단과 관련된 기록들도 다소 모순되고 분열되어 있습니다.

다수의 기록들에는 수정 및 상세 사항 기술 삭제의 흔적들까지 들어있는데,

아마 황제 본인이 지시하였거나 그의 측근들에 의해서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심지어는 그들의 뒤를 이은 현 시대의 레이븐 가드 챕터가 보유하고 있는 기록들 보관소에서조차 이 초기 시절에 대한 언급은 명백히 적은데,

보통 다른 1st 파운딩 챕터들이 선조들과 선조들의 기록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존중하는 것에 비하면 이러한 레이븐 가드의 모습은 특이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묵함이 군단 특유의 금욕적 성격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필요에 따른 것으로, 황제가 XIX 군단이라는 자신의 암수를 그들이 상대해야 할 적들에게서 기밀로 유지하기 위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군단의 초기 전쟁 기록들이 적힌 명부가 대체로 공백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거두었던 승리들은 명백한 목적이 지워지거나,

혹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완벽한 기밀 작전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 당시의 기록들 중 아직까지 살아남은 것들에 따르면

이 시기의 초기 군단은 현 시대의 챕터와는 그 성격 면에서 많이 다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황제는 XIX 군단의 신병 모집을 기본적으로 아시아 황무지 지역(Asiatic Dustfields,)의 세릭 부족민들 사이에서 수행하였는데,

이 부족민들 중에서 모집된 최초의 XIX 군단원들은 특히 천성적으로 호전적이고 잔인한 것으로 악명이 자자했습니다.

제릭 부족의 문화상은 정복자들에 대한 증오 아래 다시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패배한 적들조차 혹독하게 경계하고 탄압해야 한다는 기조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XIX 군단은 이 전통을 군단의 중심 교리들로 두어, 자신들이 패배시킨 이들을 은밀히 감시하고 그림자 속에서 그들을 관찰하면서,

만약 비행이 발생한다면 이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였습니다.


위대한 성전 초기에, XIX 군단은 보통 호루스의 루나 울브즈 곁에서 싸웠는데,

아버지 없는 군단으로서 자신들의 유전자 아버지가 운명의 변덕 속에 실종된 기간 동안

제국의 가장 뛰어난 프라이마크의 지시와 모범을 받으며 활약했습니다.

이러한 협력 체계는 상당히 효율적이였는데,

XIX 군단의 내부에 잠입해서 적을 와해시키는 특기는 루나 울브즈 군단의 장기인 전면 공습들을 잘 보완해줄 수 있었지요.

덕분에 오래지 않아, 호루스와 그의 아들들은 이 황무지 출신의 차가운 눈의 전사들을 높게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상, 훗날 워마스터로 거듭날 프라이마크가 거둔 이 시기의 초기 승리들 중 다수는 그의 크토니안 출신 전사들만큼이나 이 비밀스러운 XIX 군단원들 덕분이라고 할 수 있으나,

XIXth 군단 특유의 비밀주의와 호루스 특유의 다소 지나친 자부심 덕분에 이 점은 상당수가 비밀로 가려져 있습니다.


프라이마크의 복귀

코락스가 그의 아들들과 재회한 직후,

군단 특유의 냉혈적인 세릭 문화계는 상당수가 폐기되었습니다.

프라이마크는 본디 라카에우스의 노예 광산들 사이에서 양육되었는데,

이 시기의 교육과 생활이 그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쳤고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XIX 군단 특유의 탄압적이고 무자비한 방식들에 혐오를 가지게 되었지요.

곧 세릭 부족들 특유의 전통들과 의식들은 코락스 본인에 의해 해악으로 규정되며,

대신 코락스가 직접 창안한 '그림자의 의식들'로 대체되었습니다.

또한 상당수의 기존 테라 출신 장교들이 인사 교체라는 명목 아래 지휘부에서 추방되거나 외지로 발령되었지요.


이렇게 퇴출된 인원들 중에는 군주 아르카스 팔 또한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무려 코락스 이전까지 30여년간이나 XIX 군단 전체를 통솔해온 인물이였습니다.

팔과 그와 비슷한 다른 테라 출신들 상당수는 조용히 자신들에게 할당된 유랑 약탈 함대들을 받아들이며

사실상의 추방으로 제국의 변방들과 외지들에 배치되었습니다.

일설들에 따르면 이 함대들은 '그 끔찍한 비극'이 발생했을 당시 워마스터의 편들에 섰다고 하지만,

그러한 반역들 중 단 하나도 제대로 확인되어 입증된 바는 없으며

이 테라 출신 장교들의 진짜 운명에 대한 것 또한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장애물이라 간주한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본인이 성장한 모성 라카에우스(직후 딜리버런스라 재명명된)에서 비롯된 신병들이 새롭게 많이 유입되자,

프라이마크의 XIX 군단의 개조 노력들에도 한층 더 가속이 붙었습니다.

이제 새롭게 '레이븐 가드'라 이름 붙여진 군단은 여전히 신속하고 비밀스러운 전쟁 방식으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코락스 본인이 딜리버런스에서 행했던 것처럼 다른 행성들에게 드리운 억압들을 해방하는데 집중하기 시작하며,

군단 목적 또한 해방과 구원으로 바뀌게 되었지요.


코락스는 군단의 성격 뿐만 아니라 전투 교리적인 면들까지 재구성했습니다.

그는 그림자 전술들을 강박적으로 신뢰했고,

이에 따라 자신이 배운 모든 것들을 레이븐 가드 군단에게도 공유하며 그들을 황제 아래 그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을 정도의 섬세한 전술들의 대가들로 발전시켰지요.

이에 추가로, 코락스는 레이븐 가드의 무기고에 키아바르의 기술 길드들이 창조한 온갖 기술적 경이들을 가득 채워 넣었으니,

이러한 기술들 중 가장 으뜸가는 것이 무음과 은폐 침투를 위해 개량된 공습선들이였으며,

그 외에도 전사들이 무음으로 기동할 수 있도록 고안된, 창의적으로 설계된 음파 방해기들 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키아바르는 화성의 감시망 바깥에서 창조된 이 창의적인 혁신 기술들을 제공해준 덕분에,

비록 저 멀리 화성 사제단으로부터 고립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지언정

결과적으로 레이븐 가드와 긴밀한 협조 관계를 형성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업적들을 통해, 코락스는 레이븐 가드가 자신의 반영이자 황제의 위대한 성전에 중요한 자산으로 자라나게 되자

코락스 또한 크게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승리와 비극

위대한 성전 말기에 이르러, 레이븐 가드는 두 차례의 심각한 타격들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쿰-소토스 성단 해방 전쟁 당시,

워마스터 호루스는 코락스의 군단에게 일명 'Gate-40-2'라 불리는 요새를 선두 공습할 것을 지시하였는데,

이 교전은 훗날 '까마귀의 추락'이라 부리며 레이븐 가드가 기리게 될 정도로 숙명의 전투로 끝나게 되어버렸지요.

당시 코락스는 이는 인명의 낭비이며, 대신 기만 전략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지만 이는 지지를 받지 못했고

페투라보와 리만 러스가 호루스의 편을 지지하였기에 코락스에게는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결국 코락스의 예상대로, 레이븐 가드는 방어자들의 필사의 방어 화력망 아래 끔찍한 피해를 입고 말았습니다.

호루스는 이 전투를 통해 그가 설계한 전쟁의 승리자로 명예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

레이븐 가드는 이때 얻은 손실로 군단들 중 가장 작은 군단으로 추락하고 말았고

이 부분은 오래간 영향을 미치며 훗날의 반역자들에게 이점을 가져다주는 영향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어쨌거나 코락스는, 상당한 선견지명을 지닌 프라이마크였고

이 비극적 손실을 최대한 만회할 방법 또한 찾아내어 대비해둔 상태였습니다.

이 공습이 초래할 대가를 이미 내다본 그는 냉정한 판단으로 이 공습의 선봉 주력대를 가장 호전적이고 자신이 통제하기 힘든 아들들,

즉 군단 내 남아 있었던 세릭 부족들 출신의 아들들로 채워 넣었고

자신이 아끼는 딜리버런스 출신 군단원들은 최대한 배제하였습니다.

덕분에 '까마귀의 추락' 이후의 군단은 이전보다 훨씬 코락스적으로 교리화된 군단으로 거듭났으며,

그 전사들 또한 프라이마크 본인의 목표들과 전략적 통찰에 이전보다 더 부합하는 자들이 남게 되었지요.


게다가, Gate 40-2에서의 학살 당시 소모된 레이븐 가드 병력들 대부분은 호루스를 칭송하던 이들이였습니다.

덕분에 군단은 워마스터의 영향력에서 타 군단들 대비 더 크게 벗어나게 되었고,

이 점은 예기치 못하게도 훗날의 '암흑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허나 이 모든 것으로도 레이븐 가드 군단이 훗날 호루스의 자만이 불러온 끔찍한 결과들에서 해를 입지 않게 만들 수는 없었으니,

겨우 수 년 후에, 워마스터는 코락스의 자손들을 거의 멸망 수준으로 몰아세우게 됩니다.




 



코르부스 코락스, 까마귀 군주

위대한 성전은 XIX 군단이 마침내 자신들의 잃어버린 프라이마크와 재회하기 전에도 100여년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재회 이전의 군단과 마찬가지로, 프라이마크 본인 또한 발달기에 관해서는ㅡ그리고 사실상, 대부분의 그의 업적들 또한ㅡ상당수가 비밀로 남겨져 있으며,

심지어 레이븐 가드 챕터 자체가 보유한 역사 기록들에도 별다른 상세 기록들이 없지요.

까마귀 군주의 뛰어난 능력들에 대한 기록들은 사실상 기록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소문과 루머에 더 가깝게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그가 초자연적인 잠입의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능력이 무의식적인 싸이킥적 재능의 표출인 것인지 아니면 취사적인 변이의 결과인지는 아무도 알고 있지 못하지요.

그러나, 코락스의 백설과 같은 피부와 잉크색의 진한 눈은 확실히 그의 유전자 내에 존재하는 특징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코락스는 거의 예지 능력에 가까운 수준의 통찰력으로 유명했습니다.

확실히, 그는 미래가 펼쳐지기도 전에 어떤 미래의 윤곽을 보는 재능이 있었지요.

그 재능과 관련하여 일부 학자들은 그것이 어쩌면 초자연적인 근원을 둔 것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코락스가 그의 아버지와 처음 만났을 당시ㅡ상당한 보안 속에 이루어진, 제법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진 만남에서,

무엇인가가 그들 사이에 오고갔던 것은 아니였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황제가 코락스에게 깃든, 그의 장대한 설계들을 각성시킬 수 있는 어떤 비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였을까요?

아니면 코락스에게 곧 다가올 위기의 시대들에 대해 경고한 것은 아니였을까요?


이러한 비밀들의 진실은 옛 시대와 함께 사라졌으며, 따라서 이 추측 또한 대부분 부인되고 있습니다.

만약 황제가 이미 훗날 벌어질 일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이미 위대한 성전 당시에 많은 것들을 상당히 다르게 만들어 놓았지 않겠느냐는 이유에서이지요.

그렇기에 대부분은 코락스가 철저한 인물상을 지닌 인물이고,

덕분에 다른 이들이 쉽게 놓치거나, 혹은 영향을 주는 사소한 진실들을 잘 캐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론은 프라이마크의 자손들에 의해 제기된 것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현 41st 천년기의 레이븐 가드에게는 프라이마크가 보여주었던 그러한 예지 능력이 영 딸리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레이븐 가드 챕터가 훗날 다가올 사건들을 미리 대비하거나 혹은 사전에 확인하는 경우는 별로 없지요.


Posted by 스틸리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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