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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the black legion 중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난 이어서 말했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말하라.'


'지기스문드. 그가 어떻게 당신을 상처입힌 겁니까?'


일순간, 아바돈은 침묵에 잠겼다.

마치 야망과 자존심으로 가득한 잔혹한 활력이 일순 빠져나간 것처럼.

검은 호흡기가 그의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고, 주변의 어둠이 그의 표정을 감추고 있었으나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섬기는 군주의 얼굴 위로 수치심 같은게 지나갔음을.


아바돈이 수치심을 느끼다니, 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아바돈이 깊은 생각 끝에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단지 쓰러지지 않았던 것일 뿐이다.'


나는 구태여 그의 생각을 이해하려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의 목소리 톤에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이 가능했으므로.


'그가 당신을 유인했군요. 그리고 당신은 분노에 쫓아간 것이고.'


나는 아바돈이 이를 갈며, 그의 턱과 목근육이 실룩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놈이 날 습격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엔 이미 늦은 후였다. 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고통은 느끼지 않았지만,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놈의 흑검은 내 몸을 깊게 파고든 후였다. 마치, 그 늙은이가 내 가슴팍을 칼집으로 여기고 칼을 넣은 마냥.'


회상 속에 담긴 쓰라림과 흥미가 섞여, 주변 청자들에게 들리는 에제카일의 목소리는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점차 고조되는 속삭임과도 같았는데, 그가 던지는 단어 하나 하나는 쓴맛이 담겨 마치 맨살에 떨어트리는 산성액 방울과도 같이 느껴졌다.


'날 죽이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는 길이였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놈은 그 순간이 왔을 때, 기꺼히 그리했다.

놈의 검이 내 몸을 관통한 순간, 우리는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내 갑주에서는 번개가 튀어올랐지.

허나 그 일격은 결국 실패했다.

나는 반격을 날렸고, 놈의 피가 내 발톱을 적셨다.

그리고 놈은 쓰러졌지.'


나는 숨죽인채로 말을 아꼈다. 아바돈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풀릴 수 있게.

그의 두 눈은 이미 날 건너 뛰어, 그 날 있었던 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나 놈은 죽지 않았어, 카욘. 놈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마치 시체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몸이 반으로 잘려, 내장을 다 쏟아낸채로 놈은 나뒹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있었다.

나는 결국 무릎을 꿇었고, 내 죽어버린 폐들이 계속해서 숨을 쉴 수 있도록 발악했다.

그 순간 놈의 머리맡에 무릎 꿇은 내 모습은 마치 아포테카리와도 같았지.

놈의 흑검은 그대로 내 가슴에 꽂혀 있었다.

우리 둘의 눈이 다시 마주쳤고, 그 순간 놈은 입을 열었다.'


나는 아바돈에게 구태여 입을 열어달라 요청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사념에 닿아, 그가 내 존재를 거부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접근했다.

준비가 완료되자 난 내 두 눈을 닫았고, 그 순간 그 날의 순간이 눈 앞에 펼쳐졌다.


흑기사. 찢겨 쓰러진 흑기사가 거기 있었다.

그의 소드 브리튼 형제들은 전부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죽어 있었기에,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기스문드의 외투 위에는 붉은 얼룩이 튀어 있었고,

그 붉은 피는 그 주변과 함교 근처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아바돈 또한 두 눈에 핏물이 고여, 시야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피. 너무나도 많은 피였다.


그 순간에 이르러, 지기스문드는 모든 지난 나날들을 회상하고 있었다. 그 회상이 흘러감에 따라 지기스문드의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새겨져갔다.

그의 시선은 방 안의 화려한 천장을 향하고 있었다. 두 눈은 마치 황금 옥좌에 앉은 인류의 주인을 기리는듯이 보이고 있었다.

지기스문드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꿈틀대며, 그는 자신이 떨군 검을 다시 쥐려 하고 있었다.


'그러지 마라,' 피가 줄줄 새어나오고, 가슴팍이 온통 헤집어진 상태에서도 아바돈은 승리에 대한 확신 속에 마치 형제와 같은 아량을 담아 그에게 말했다.


'그만 두어라. 모든 것은 끝났다. 그저 잠들거라. 네가 얻은 것이라곤 실패 분이니까.'


이제 기사의 손가락들은 끝자락으로 바닥의 흑검 손잡이 끝을 건드리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닿기 직전이였으나, 그는 그것을 쥐고 휘두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핏기가 다 빠져 마치 갓 만들어진 시체마냥 창백했으나,

지기스문드는 여전히 숨쉬고 있엇다.


'지기스문드,' 아바돈이 입을 열었다. 그의 두 입술은 이제 그가 흘리고 있는 생혈만큼이나 검게 물들어 있었다.


'이 발톱은 지금껏 두 명의 프라이마크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리고 황제까지 죽음으로 몰아세웠지.

이제 네놈의 생명 또한 이것으로 앗아가게 되었구나.

내가 지금 보는 장면을 너 또한 볼 수 있으면 참 좋았으련만.'


난 아바돈의 두 눈을 통해 그를 내려보았다.

솔직히, 나는 그 자리에서 지기스문드가 아바돈 앞에서 어떤 기사적 맹세에 따른 진부한 모습이라던가,

아니면 황제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중얼거린다던가 하는 그런 뻔한 것을 상상했다.

허나, 과거 임페리얼 피스트의 퍼스트 캡틴이자, 이제는 블랙 템플러 챕터의 초대 하이 마셜인 그 자는 

입속에 피를 가득 머금었으면서도, 검 손잡이를 쥘 힘조차 없는 그런 상황에서도

그의 마지막 생명을 불태워, 한단어 한단어를 또렷하게 눌러 발음하며

떨리지만, 그 어떤 말보다도 분명하고 확신에 찬 말을 아바돈에게 하고 있었다.


'네놈은 네 나약해빠진 아비가 뒤졌던 것처럼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시시하고, 명예 없이 비참하게. 눈물이나 짜며, 수치 속에 죽겠지.'


지기스문드가 내뱉은 마지막 단어가 곧 그의 마지막 숨이 되었다. 그의 마지막 단어가 입을 떠난 순간,

그의 영혼 또한 그와 함께 사라졌다.


내가 두 눈을 다시 뜬 곳은 아포테카리온 안이였다. 그리고 무어라 그 안에서 말할만한 것은 없었다.

지기스문드의 장렬한 마지막 저주 이후 내가 무어라 할 말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펄쿠스가 지기스문드의 시신을 '성전사'호에서 끌고나왔다.' 아바돈이 이어서 말했다.


'그는 그의 시신을 직접 챙겨서 나왔지.'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그것을 전리품으로 원했던지,

아니면 어떤 신성한 작업을 위해 지기스문드의 시신을 사용하길 원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바돈은 다시금 무언가 지친듯한 눈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가 이제 내가 떠나길 원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다못해 떠나는 나조차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다만 지기스문드를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한때 그가 존경했고ㅡ최후에는 그를 경멸하며 죽은 형제에게 건내지 못했던 대답들이 아직도 그의 마음 속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나는 떠나는 그 순간에 어떤 슬픔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공허함. 끝없는 공허함만이 남아 있었다.


차라리 슬픔보다 더한 공허함이.


이후 카욘(지금 위에서 아바돈과 대화한 화자)은 아바돈의 사자로 1차 암흑 성전 직후 지기스문드의 시신과 흑검을 제국에게 직접 전달해줌.

그리고 그것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음.


-우리가 다시 돌아왔다.-


ps. 우리의 초대 블랙 템플러이신 지기스문드는 죽는 순간까지 구차하게 핑계대는 대신

아바돈에게 팩트로 뻐큐를 날려주셨네요.

오늘 앶3은 블템 성전으로 가야겠음.

Posted by 스틸리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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