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ource : Warhammer 40k 9th Rulebook
참호 위로 쏟아지는 볼트 탄들을 피해, 설교사 케임은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탄들은 참호선 방어 보강을 위해 개활지에서 달려오던 토리아의 분대에 직격으로 꽂혔다.
끔찍한 비명과 묵직한, 고기 터지는 폭발음들이 들려왔고
그것으로 케임은 아, 이번 지원군들도 도착하지 못하겠구나 라고 직감했다.
식은땀 속에 몸을 떨며, 프리스트는 참호선 한구석에 웅크려 앉아 기도문들을 중얼거렸다.
그때 누군가가 거칠게 미는 바람에 그는 참호 진창에 쓰러졌다.
그를 친 사람은 크랸 중사였는데, 그는 설교사는 아랑곳않고 진작에 사격선에 서서 대응 사격 중이었다.
그레이브즈와 칼로가 곧 그를 뒤따라 나타났다.
그레이브즈는 분대 수류탄 발사기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칼로는 한쪽 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는데 그래도 중사를 따라 전투에 참전했다.
'어이 목사, 여기서 할 일이 없다면 좀 지나가게 비키기라도 하쇼,' 크랸이 거칠게 내뱉었다.
다시 시선을 돌린 그는 다가오는 적들에게 대응 사격을 가했다.
적 오토건 탄환들과 그가 발사하는 라스 광선들이 사격선 앞의 플레이크보드와 땅을 헤짚었다.
그럼에도 중사는 몸을 조금 움찔할 뿐이었다.
케임은 이 광경에 수치심을 느꼈다.
설교사는 신념을 굳게 다지며 그것을 원동력으로 다시 일어섰다.
아톤 케임은 황제 폐하의 시선 아래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
다른 걸 떠나서, 신-황제께서 그의 신앙찬 마음을 높이 사셔서 은총을 내리실 것이라고,
케임은 그런 희망을 떠올렸다.
어쩌면, 자신의 충분한 신념의 열의가 이 무자비한 반역자들의 공세 앞에 이들을 살려줄 기적을 내려줄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통신병!' 쏟아지는 적병들을 향해 사격을 계속하며, 크랸이 소리쳤다.
케임은 서전트의 옆에 서서 이쪽으로 몰려오는 적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컬티스트들로, 너덜너덜한 로브를 입고 값싼 사제 오토건들을 쏘아대고 있었다.
그들 뒤편으로 커다란 중장갑 전사들이 전진하고 있었는데,
전쟁 매연 때문에 제대로 식별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 두려움만큼은 제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들의 아이 렌즈들에서는 지옥의 핏빛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볼터들은 불을 뿜고 있었다.
이참호선 앞, 크레이터들로 얼룩진 무인 지대 진창 위로는 벌써 수천의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이곳이 한때 남쪽의 농업-벨트 5-5-4 구역이였다는 건 어디서도 알아볼 수 없었다.
아군 폭격이 계속해서 떨어지던 동안에는, 적들이 돌격 와중에 죽어나갔기에
케인 또한 이 이단 오물들이 절대로 이 제국 참호선들을 침범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지만
이제 후방 야포 사격이 침묵에 잠겼기에,
ㅡ그것이 어째서인지는 오직 황제 폐하만이 아시겠지만
실시간으로 이 행성 방위군의 얇은 방어선이 부식되고 있음을 케인 또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거대한 악마들이 여기까지 도달한다면...
'통신병!' 크랸이 또 소리질렀다.
그 목소리가 워낙 컸기에, 케임은 화들짝 놀라며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르커는 죽었슴돠, 분대장님,' 숨찬 목소리로 트린이 보고했다.
그와 동시에 파우스텐, 프레이스트가 아래쪽 참호에서 이쪽 사격선으로 올라왔다.
곧 그들의 라스건들 또한 불을 뿜었고, 에너지 광선들이 적들에게로 쏟아졌다.
'그렇다면 그 자식 통신 장비도 작살났겠군, 그치?' 크랸이 심기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트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브즈 병사가 발사한 수류탄 발사기의 폭발 파열음 때문에 대답은 들을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볼 수 있었다.
'젠장할 신성 옥좌이시여, 이제 뭘 해야 하는 겁니까?' 파우스텐이 패닉 직전에 휩싸여 물었다.
프레이스트는 이미 전쟁 쇼크에 눈에 혼이 나가있었고, 나머지 병사들도 딱히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만약 이들의 사기가 무너진다면, 생존 희망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케임은 스스로의 각오를 세웠다.
'오오 신성 황제이시여, 당신의 신념어린 종들을 굽어살피소사,' 그가 떨리는 음성으로 목소리 높여 기도를 읊기 시작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당신의 근엄한 은총으로 저희에게 축복을 내려주시옵소서,
우리는 여기서 당신의 이름 아래 싸우며 당신의 뜻 아래 모든 것을 바치고 있나이다.'
설교사 주변의, 크랸의 분대원들은 분대에 속한 목사의 설교에 다시금 용기를 얻었다.
일부는 그를 따라 기도를 읊으며 다시 다가오는 이단들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자신 덕분에 병사들이 조금이나마 힘을 얻자,
케임은 그 모습에 힘이 올랐다.
그의 목소리는 더 굳세지고, 커지기 시작했다.
'아아 전능하신 신-황제이시여!
당신께, 우리 눈 앞의 저 이단들을 파괴할 힘을 요청하옵니다!
이 부정한 적들을 정화하기 위해, 당신의 도움을 감히 갈구하옵니다!'
케임은 참호선 위, 아래에서 다른 겁먹은 병사 무리들이
자신의 설교가 커짐에 따라 조금씩 힘을 내며 다시 일어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제발, 신-황제 폐하님, 만약 당신의 기적적인 개입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지금이옵니다. 제발, 제발!
그리고 그 순간, 케임은 화들짝 놀랐다. 마침내 발견한 것이다.
여전히 그는 마치 자신에게만 들리는 성가라도 있는 마냥, 저 중간 어딘가를 뚱하게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의 머리와 양 어깨 위로 찬란한 빛의 휘광이 밝게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케임은 깜짝 놀라 눈을 껌뻑거렸고,
그 빛이 더 강해짐에 따라 읊던 기도문 또한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황제의 이름에 걸고 이건 또 뭐야?' 크랸이 깜짝 놀라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지친 중사조차도 목소리 안에 경외심을 가득 담을 정도였다.
프레이스트 병사는 그대로 몸을 떠올리더니,
그대로 참호선을 넘어 무인지대로 향했다.
탄들이 그의 주변에서 튀었지만,
단 하나도 그 은총받은 전사를 건들지 못하였다.
볼트 탄조차도 그의 얼굴 바로 앞에서 터졌고,
매연과 파편조차도 그의 주변에서 무의미하게 꺾일 뿐이었다.
'그는 축복받았네...' 설교사 케임이 감격에 헐떡이며 말했다.
허공에서 부드러운 합창 음조가 은은하게 들려오자, 그는 이제 감격에 차 들뜨고 있었다.
다시 한번, 소리높여 그가 외쳤다.
'그는 축복받았다! 황제께서 디에터 프레이스트 이병을 축복하셨다!'
크랸의 분대 수 명이 감격에 차 흐느껴 우는 소리와 함께,
케임은 아군 전선에서 터져나오는 환호성을 들을 수 있었다.
설교사의 심장은 이제 흥분에 마구 요동치고 있었다.
프레이스트가 느릿하게 한 손을 털며 신성한 빛의 물결을 적 한가운데에 쏟아내자, 그 환호성은 더욱 커졌다.
그 공격에 카오스 컬티스트들이 닿자마자 불길 속에 터져죽었다.
산 채로 불타 오르며 비명을 지르다, 이내 재가 되며 흩어졌다.
케임은 충격에 움찔하다가, 이내 의기양양함에 사로잡혀
주변의 병사들과 함께 미친듯이 환호했다.
'우리는 구원받았다! 황제께서 우리에게 성자를 내려주셨다!'
프레이스트는 계속해서 손을 겨누고, 또 겨누었다.
그가 느릿하게 손을 들어올릴 때마다, 한 무더기의 이단들이 화염에 타올랐다.
이제 적 진형 전방은 완전히 분쇄되어 있었고, 기세는 진작에 꺾여 없어진 뒤였다.
그들은 서로 짓밟으며 패주하고 있었다.
우리 제국 신앙이 만들어낸, 불타는 화신 앞에서 적들은 어떻게든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쳤다.
칼로 병사가 갑자기 나가 떨어지며 참호 뒤편 벽에 내다꽂혔을 때, 케임은 화들짝 놀라 뛰어올랐다.
그의 머리 속으로 그녀가 아마 총탄에 맞았을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으나,
그 순간 그녀의 몸으로 백색 화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목사는 주춤거리며 물러섰고, 곧 그녀의 잿맛이 혀 끝에서 느껴졌다.
그는 미친듯이 눈 앞을 휘저으며 재를 흩어냈다.
말도 안 돼! 그 생각이 그의 머리 속에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바램에 불과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빛이 번쩍였다. 허공의 성가는 더욱 더 커지더니, 곧 끔찍한 비명소리로 바뀌었다.
비록 빛에 싸여 있었으나, 케임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프레이스트 이병이 계속해서 손을 뻗고 또 뻗으며, 불길로 아군과 적 모두를 태워죽이는 것을.
그러나, 이제는 케임의 '잠정' 성자 본인 또한 불타오르고 있었다.
천상계의 화염이 그의 몸 주변을 뒤덮고 있었다.
기겁한 케임의 시선 앞에서, 병사의 모습은 마치 두 이미지가 허접하게 하나로 붙여져,
현실의 피부 위에서 서로 충돌하듯이 초점 없이 뿌연 모습이었다.
하나는 아름다운 성자의 모습이었으나,
하나는 불타오르며 그 살이 녹아내리고 있는, 비명을 지르는 괴물의 모습이었다.
케임은 그 불타는 살덩어리에서 또아리치는 촉수들이 튀어나오며 크랸 중사를 휘감자, 몸을 돌려 도망쳤다.
중사의 끔찍한 비명소리는 곧 그의 뼈가 분쇄되고 백색 불길이 그의 온 몸을 휘감자, 피 끓는 가글 소리로 바뀌었다.
심장이 요동치고, 패닉에 휩싸인 상태에서
정신은 백색 소음에 가득 차버린 케임은 참호선의 뒤쪽 벽을 타고 개활지 쪽으로 기어올라갔다.
병사 파우스텐과 트린 또한 곧 재가 되어 터져버렸고,
그 잿가루가 케임에게 닿았다.
황제이시여, 그는 생각했다. 이해가 안 됩니다. 황제이시여, 황제이시여 제발...
성가 비명은 이제는 완전히 절정에 도달했다.
개활지 위로 도망치던 케임의 뒤편에서, 오싹한 낮은 폭발음이 느껴졌다.
그 순간 그는 통째로 나가 떨어지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뜨거운 액체와 백색 화염의 불길들이 그의 주변을 휘감았고,
눈 앞에서 지면이 마구 흔들리며 별들이 터져나왔다.
곧, 그는 충격 속에 눈이 핑핑 도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되찾았다.
고통이 케임의 오감을 다시 날카롭게 했고,
그 통증을 따라 시선을 내리자 두 다리가 난자당해 잘려있는 것이 보였다.
피가, 밝은 적색의 피가 선명하게 잘려나간 부위에서 흘러내리며 메마른 진창을 적시고 있었다.
케임은 머리를 들어올려 크랸의 분대가 있었던, 이제는 피에-젖은 크레이터 웅덩이를 경악 속에 바라보며 신음했다.
단 한 명의 병사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그 거대한, 중장갑의 적 전사들만이 사방에 넘치는 재들을 헤치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두 눈 렌즈들을 불태우면서.
'황...ㅈ...제...' 케임이 간신히 몇 마디를 개골거렸다.
그는 공포와, 경악과 끔찍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이제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기만으로, 기만 그 자체였다.
결국 병사들은 허무하게 목숨만 잃은 셈이었다.
'황...제...'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이 탄원인지 비난인지는 그 본인도 알 수 없었지만.
이제 중장갑 거인들 중 한 명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괴물의 헬멧에 올라온 뿔들이 하늘 아래서 불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깊은 진홍색 견갑을 장식하는 불타는 해골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는 것이 보였는데,
케임은 그것이 프레이스트 병사의 소름끼치는 마지막 흔적임을 깨달았다.
'네 황제는 여기 없다, 작은 구더기야.' 거대한 전사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금속음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그는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어.'
전사는 마침내 한쪽 발을 들어올렸고,
군화 밑창을 케임 목사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목사는 잠시 동안 자신의 머리통이 으스러지는 고통을 느꼈고,
그 뒤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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