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Dark Imperium
프라이마크의 죽음.
1만년 전.
3장 : 타락한 피닉스
헬리오폴리스는 표현하자면 폐허가 되어버린 무대라고 할 수 있었는데,
다만 대리석 관람석들이 설치되어 있었던 층계형 관객석은 박살나서 어둠만이 덮혀져 있었다.
과거, 그러니까 그가 어둠에 빠지고 그의 군단 또한 함께 타락해버리기 전에,
펄그림을 따르는 이들은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이 극장에 자주 모이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옛 극장 시절의 화려함과 찬란한 빛은 온데간데없고 다만 남은 것은 부패와 황량함 뿐이였다.
돔형 천장의 거대 글라스 창문들 또한 필요보다는 그저 방치에 의한 결과로 환기용 창문들이 전부 닫혀 이제는 완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사방에는 두껍게 쌓인 먼지만이 가득했으며,
공기는 짙은 꿀내와 숨 막히는 사향 향기가 은연중에 짙게 흐르고 있었다.
쓰러진 화로들 주변에는 뼈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 뼈들의 주인은 대체로 보통 인간들이였으나, 그 사이 사이에 그 커다란 규격, 융합된 갈빗대 구조와 너덜너덜한 블랙 카라페이스 잔여물로 보아 스페이스 마린들의 뼈로 보이는 골격들도 흩어져 있었다.
또한 대리석 바닥 이곳 저곳에 탄구들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 여기서 전투가 벌어졌음이 확실했다.
부드러운 대리석 벽에 박힌 탄구의 큰 직경들은 볼트탄 폭발의 특징들로,
이를 통해 여기서 스페이스 마린들이 스페이스 마린들과 싸웠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어느 연대에 발생한 전투인지까지는 길리먼도 알 수 없었지만
길리먼은 그 현명한 판단력을 통해 테라에 충성을 맹세한 엠퍼러스 칠드런 군단원들이 여기서 최후까지 버텼을 것이라 추측했다.
물론, 어쩌면 라이벌 워밴드들끼리 대략 수십년 전에 여기서 충돌했던 것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만,
어느 쪽이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천장 벽의 모자이크 인물 벽화들은 사방이 볼트 탄들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사실상 그림 내 모든 얼굴들이 박살나 있었다.
그 인물화들 사이 사이에는 고리들이 박혀 있었으며, 고리들 밑으로는 접혀진 군기들이 걸려 있었는데,
일부 승전기들은 찢겨서 함선 진동에 맞추어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이전에, 이 군기들은 황제의 이름 아래 거둔 수천의 승리들을 기념하는 용도로 전시되었지만,
이제는 그 승리들을 거둔 전사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그런데 그 걸레짝들 중 하나는 완벽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군기 주변의 전시용 장치들이 그 주변으로 역겨운 오물을 배출하고 있었으므로,
역으로 다른 망가진 군기들보다도 어떤 면에서는 더 보기 좋지 못한 느낌이였다.
헬리오폴리스 내에는 오직 고요함 뿐이였다.
음성 보고들이 길리먼의 헬멧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며, 각 공습 부대들이 거둔 소기의 성과들을 보고하면서
이 죽음의 극장 내에서 길리먼에게 전장의 소음을 계속해서 들려주고 있었지만
그 소음들은 오직 길리먼의 헬멧 안쪽에서만 나는 것에 불과했다.
극장을 감도는 침묵은 그보다도 훨씬 강렬했으며,
마치 압력처럼 그의 세라밋 헬멧판을 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싸우는 전사들과 길리먼은 지금 이 순간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헬리오폴리스 중앙의 무대는 원형으로, 그 한 가운데에는 어떤 검은 왕좌가 세워져 있었다.
길리먼은 그의 형제와 함께 그 자리에 나란히 서서 함께 토론했던, 지금과 같은 광기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옛 나날들을 떠올렸다.
원형의 부드러운 조명이 그 왕좌 위를 비추고 있었는데,
그것은 주변에 가득한 자갈석 파편들을 덮은 어둠을 몰아내며, 흑색 테라조(대리석에 쇄석을 갈은 바닥 포장재) 바닥 위에 왠지 모를 섬뜩한 빛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길리먼은 불사조 문을 지나 마침내 무대를 향해 걸어가며 층계들을 하나씩 밟으며 내려왔다.
그가 내려가는 주 층계들은 한때 섬세하게 빛났지만,
그 때의 빛은 이제와서는 완전히 사라진지 오래였다.
오로라 챕터의 전투 포효성들, 노바마린들의 전투 맹세들과 둠 이글 챕터의 우렁찬 고함들 모두가 그의 헬멧에서 울리고 있었다.
그런 소음들 사이로 갑자기 큰 정전기 소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큰 폭발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소음이였다.
길리먼의 헬멧 디스플레이로 출력되는 기호 룬은 녹색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이는 오로라 챕터가 함내 네비게이토리움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곧 오로라 챕터의 캡틴들이 쏟아지는 잡음들이 섞인 보고들을 보내며,
그들이 거둔 힘든 승리에 감격함과 동시에 이제 곧 바로 이 적함에서 텔레포트 철수하겠음을 보고했다.
길리먼는 그들이 승리의 환희 속에 텔레포트 좌표를 송신하는 것까지 들을 수 있었고,
곧 오로라 챕터는 사라졌다.
다른 기호들은 면갑 디스플레이상 위쪽 지점에서 적생으로 출력되고 있었는데,
이 신호들은 다른 공습 팀들의 남은 목표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두 개의 적함 중요 시스템들이 아직 작전 진행 중이였고,
다른 두 개는 녹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쩌면 이 함선에서 이미 탈출했는지도 모르지만, 어찌되었건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였다.
'아들들아, 각자 임무들에 집중하도록.' 그는 간단명료히 음성 명령을 전송했다.
'임무 완수 후에는 바로 철수할 것. 황제 폐하께서 그대들을 가호하리라.'
직후 그는 음성 통신을 차단했다.
그것으로 헬리오폴리스의 불길한 고요가 그의 헬멧 안까지 채우기 시작했다.
이제 길리먼은 마지막 하나 남은 계단까지 내려오며 가운데의 원형 무대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마지막 수 번의 발걸음 소리가 어둠과 고요에 잠긴 극장에 메아리쳤다.
이 곳에서 빛은 완전히 불확실했는데, 무언가 불확실한 왜곡 현상 때문에 길리먼은 헬리오폴리스의 반대편을 확실히 확인할 수 없었다.
사실상 여기서 그는 위험에 노출된 상태였다.
이 곳은 타락한 형제가 자신과 길리먼과의 마지막 결투를 위해 준비한 무대였다.
펄그림 자신의 옛 잃어버린 영광들을 기리는 이 버려진 장소가 그가 선택한 무대인 것이다.
'펄그림! 내가 여기 왔다. 펄그림! 그대의 형제, 나 로버트 길리먼이, 여기 헬리오폴리스에 다시 왔다.
어찌하여 나를 맞이하지 않는 것이더냐?'
길리먼의 음성은 음성망을 통해 더욱 확대되어 헬리오폴리스 전체에 메아리쳤다.
그런데 소름끼치게도, 그 메아리들은 점점 이상하게 슬픈 음색으로 변질되더니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마치 비꼬는 음성처럼 들리고 있었다.
그것에 길리먼은 실망했다.
'한때 나의 형제였던 자여, 네놈의 같잖은 요술 짓거리로는 나를 화나게 만들지 못한다!
어서 나와 나와 마주하거라, 그럴 용기가 있다면 어서 썩 나와라!
아니면, 네놈이 타락한 수준만큼이나 이제는 겁쟁이가 되어버린 것이더냐?'
그러자, 어둠 속에서 무언가 금속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무언가 비늘진 피부가 돌바닥을 긁는 듯한 소음이 어둠에 잠긴 길리먼 반대편의 관중석들 위쪽에서부터 들려왔다.
길리먼은 소리가 나는 방향을 집중해서 바라보았으나,
그의 앞에서 비추는 조명 때문에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고,
덕분에 지금 그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곤 원형 무대 위 뿐이였다.
'네가 오는 것이 들린다, 펄그림!' 그가 포효했다. '어서 썩 빛 위로 나오거라!'
이번에는, 마침내 펄그림이 답했다. 그의 음성은 그 옛날과 다름없이 그야말로 감미로웠으나,
언제나 그리했듯 그가 내뱉는 말 뒤편으로 '결핍'이 뒤따랐다.
마치 구밀복검한 악의어린 의도처럼.
'어째서 그리도 서두르는 것일려나?' 그가 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헬리오폴리스 전체를 휘감았다.
'네 전술은 시간이 참으로 중요하니까, 그렇지?
알록달록 이쁜 색깔들로 새롭게 칠해진 네 자식들이 이 함선을 침몰시킬 시간을 벌어줘야 하니까. 그렇지 않나?
아아, 그들은 참으로 알록달록 이쁘더군, 길리먼아.
원래의 청색 ,청색, 청색보다 훨씬 보기 좋잖은가?
그것 때문에 네 군단을 부셔놓은 것이더냐, 길리먼?
아, 혹시 이 질문은 언짢을려나?'
'어서 썩 나와서 내 앞으로 나오거라. 나와 네놈이 가진 의견차들에 대해서 명예롭게 결착짓자.'
'대화라도 나누자는 것이더냐?' 펄그림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어둠 속에서 그는 분명한 조롱의 웃음소리를 피워내고 있었다.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눌까?
아, 형제들간의 재결합?
하지만 너와 나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지.
우리는 그런 적도 없었지만, 이제는 훨씬 더 그렇지 않아.
네가 우리들의 죽어 썩어가는 아버지의 손 아래 놀려지며 쇠약해져가는 동안,
이 몸께서는 이 우주를 관장하는 진정한 힘들을 섬기고 있단다.
너는 너무 뻔해서 재미없어, 로버트.'
펄그림이 소름끼치는 웃음을 토해냈다.
'너무나도 둔해, 너무나도 무감각해.
지루한 우리의 옛 친구 로버트라니!
너는 사랑 받아본 적 없는 아이에 불과해,
다른 아이들은 제 아비의 모든 시선들을 한몸에 받았는데 말이야.
우리의 길리먼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소외받았지만,
정작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자 그 자리에는 없었다지?
오 형제여, 좀 상처받았을려나?
하지만 빛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법이라네.
예전에, 페투라보는 이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대는 어떨려나?'
ps. 뜬금없게 페투라보는 왜 언급한걸까요?
어쨌거나 이제서야 등장하는 펄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