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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ark Imperium


프라이마크의 죽음.

1만년 전.


3장 : 타락한 피닉스

길리먼은 무대를 조명하는 빛 너머 어둠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자 빛은 마치 길리먼의 막강한 의지에 답하기라도 하듯, 특유의 흐릿한 효과가 줄어들었고

무대 뒤편의 어둠 속에서 꾸물거리는 소름끼치는 것의 움직임이 실루엣이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아버지께서는 항상 나를 존중해주셨다,' 길리먼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극장에서 소리쳤다.

그러자 펄그림은 웃었다. 그의 기괴한 웃음소리는 점차 더욱 커지고 커져서 종국에는 헬리오폴리스 극장 전체를 그의 환희로 가득 채웠으며,

마치 수천 목구멍에서 나오듯 그 소리의 마디 마디가 전부 제각각 다르게 느껴졌다.


'오, 나를 용서해주게! 하지만 정말이지 깜찍하기 그지없어서 말이지.

하지만 혹시 이 몸께서 지녔던 독수리가 생각나지 않던가, 우리의 사랑스러운 길리먼께서는?

그에게 존중을 받았던 건 나야 길리먼, 너 따위가 아니지.'


그 말과 함께 비늘들이 서로 부딛히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밤 중의 파충류 야수와 같은 야광의 녹색 눈들이 무대 위의 으스스한 조명 너머로 흐릿하게 반짝거리는 것이 길리먼의 눈에 들어왔다.

길리먼은 긴장하면서 언제든 반격할 준비를 해두었다.


'네놈의 같잖은 찬사를 받기에는 내 군단이 덜 화려할지도 모르지, 펄그림.

허나 나는 언제나 느리더라도 정직한 길만을 택해왔다. 왜냐면, 항상 정직하고 바른 길만이 가장 최선의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너는 언제나 완벽함을 향해 달려왔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외면해왔지.

하지만 그 덕에 네 두려움이 널 저주의 품으로 달려가는 길로 인도하게 만들어버린거다.' 


'실패?' 펄그림이 조롱하며 비웃었다.


'저주라니? 나는 전혀 실패하지 않았다! 나는 저주받지 않았다고!'


펄그림이 무대의 조명 위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나는 구원받은거야.'


'테라이시여 맙소사...' 길리먼이 경악하며 숨을 들이켰다.


이미 일전에, 테라에서 펼쳐진 황궁 공성전 당시 길리먼은 그의 형제를 찍은 화면 캡쳐물들을 본 적이 있었다.

길리먼은 그것들을 여러번 보고 분석해 본 적 있었으며,

그의 형제에게 일어난 변화들을 최대한 냉철하게 분석하면서 그 모습을 볼 때 느껴지는 혐오감을 참아왔다.

또한 이후에도 그가 지금껏 저질러온 온갖 약탈 행위들에서 포착된 그의 모습들을 여러번 이미지 캡쳐로나마 봐온 적 있었다.

그래왔기에, 불사조 대문을 다시 보았을 때에도 별달리 큰 충격을 느끼진 않았었다.

그는 펄그림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이미 알고 있었다.

허나 펄그림을 눈 앞에서 직접 마주하게 되자,

그는 생생히 올라오는 혐오와 극렬히 싸워야만 했다.


ps. 앶3해야되서 오늘번역은 짧음

Posted by 스틸리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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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ark Imperium


프라이마크의 죽음.

1만년 전.


3장 : 타락한 피닉스

헬리오폴리스는 표현하자면 폐허가 되어버린 무대라고 할 수 있었는데,

다만 대리석 관람석들이 설치되어 있었던 층계형 관객석은 박살나서 어둠만이 덮혀져 있었다.

과거, 그러니까 그가 어둠에 빠지고 그의 군단 또한 함께 타락해버리기 전에,

펄그림을 따르는 이들은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이 극장에 자주 모이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옛 극장 시절의 화려함과 찬란한 빛은 온데간데없고 다만 남은 것은 부패와 황량함 뿐이였다.

돔형 천장의 거대 글라스 창문들 또한 필요보다는 그저 방치에 의한 결과로 환기용 창문들이 전부 닫혀 이제는 완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사방에는 두껍게 쌓인 먼지만이 가득했으며,

공기는 짙은 꿀내와 숨 막히는 사향 향기가 은연중에 짙게 흐르고 있었다.


쓰러진 화로들 주변에는 뼈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 뼈들의 주인은 대체로 보통 인간들이였으나, 그 사이 사이에 그 커다란 규격, 융합된 갈빗대 구조와 너덜너덜한 블랙 카라페이스 잔여물로 보아 스페이스 마린들의 뼈로 보이는 골격들도 흩어져 있었다.

또한 대리석 바닥 이곳 저곳에 탄구들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 여기서 전투가 벌어졌음이 확실했다.

부드러운 대리석 벽에 박힌 탄구의 큰 직경들은 볼트탄 폭발의 특징들로,

이를 통해 여기서 스페이스 마린들이 스페이스 마린들과 싸웠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어느 연대에 발생한 전투인지까지는 길리먼도 알 수 없었지만

길리먼은 그 현명한 판단력을 통해 테라에 충성을 맹세한 엠퍼러스 칠드런 군단원들이 여기서 최후까지 버텼을 것이라 추측했다.

물론, 어쩌면 라이벌 워밴드들끼리 대략 수십년 전에 여기서 충돌했던 것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만,

어느 쪽이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천장 벽의 모자이크 인물 벽화들은 사방이 볼트 탄들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사실상 그림 내 모든 얼굴들이 박살나 있었다.

그 인물화들 사이 사이에는 고리들이 박혀 있었으며, 고리들 밑으로는 접혀진 군기들이 걸려 있었는데,

일부 승전기들은 찢겨서 함선 진동에 맞추어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이전에, 이 군기들은 황제의 이름 아래 거둔 수천의 승리들을 기념하는 용도로 전시되었지만,

이제는 그 승리들을 거둔 전사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그런데 그 걸레짝들 중 하나는 완벽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군기 주변의 전시용 장치들이 그 주변으로 역겨운 오물을 배출하고 있었으므로,

역으로 다른 망가진 군기들보다도 어떤 면에서는 더 보기 좋지 못한 느낌이였다.


헬리오폴리스 내에는 오직 고요함 뿐이였다.

음성 보고들이 길리먼의 헬멧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며, 각 공습 부대들이 거둔 소기의 성과들을 보고하면서

이 죽음의 극장 내에서 길리먼에게 전장의 소음을 계속해서 들려주고 있었지만

그 소음들은 오직 길리먼의 헬멧 안쪽에서만 나는 것에 불과했다.

극장을 감도는 침묵은 그보다도 훨씬 강렬했으며,

마치 압력처럼 그의 세라밋 헬멧판을 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싸우는 전사들과 길리먼은 지금 이 순간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헬리오폴리스 중앙의 무대는 원형으로, 그 한 가운데에는 어떤 검은 왕좌가 세워져 있었다.

길리먼은 그의 형제와 함께 그 자리에 나란히 서서 함께 토론했던, 지금과 같은 광기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옛 나날들을 떠올렸다.

원형의 부드러운 조명이 그 왕좌 위를 비추고 있었는데,

그것은 주변에 가득한 자갈석 파편들을 덮은 어둠을 몰아내며, 흑색 테라조(대리석에 쇄석을 갈은 바닥 포장재) 바닥 위에 왠지 모를 섬뜩한 빛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길리먼은 불사조 문을 지나 마침내 무대를 향해 걸어가며 층계들을 하나씩 밟으며 내려왔다.

그가 내려가는 주 층계들은 한때 섬세하게 빛났지만,

그 때의 빛은 이제와서는 완전히 사라진지 오래였다.


오로라 챕터의 전투 포효성들, 노바마린들의 전투 맹세들과 둠 이글 챕터의 우렁찬 고함들 모두가 그의 헬멧에서 울리고 있었다.

그런 소음들 사이로 갑자기 큰 정전기 소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큰 폭발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소음이였다.

길리먼의 헬멧 디스플레이로 출력되는 기호 룬은 녹색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이는 오로라 챕터가 함내 네비게이토리움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곧 오로라 챕터의 캡틴들이 쏟아지는 잡음들이 섞인 보고들을 보내며,

그들이 거둔 힘든 승리에 감격함과 동시에 이제 곧 바로 이 적함에서 텔레포트 철수하겠음을 보고했다.

길리먼는 그들이 승리의 환희 속에 텔레포트 좌표를 송신하는 것까지 들을 수 있었고,

곧 오로라 챕터는 사라졌다.


다른 기호들은 면갑 디스플레이상 위쪽 지점에서 적생으로 출력되고 있었는데,

이 신호들은 다른 공습 팀들의 남은 목표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두 개의 적함 중요 시스템들이 아직 작전 진행 중이였고,

다른 두 개는 녹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쩌면 이 함선에서 이미 탈출했는지도 모르지만, 어찌되었건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였다.


'아들들아, 각자 임무들에 집중하도록.' 그는 간단명료히 음성 명령을 전송했다.


'임무 완수 후에는 바로 철수할 것. 황제 폐하께서 그대들을 가호하리라.'


직후 그는 음성 통신을 차단했다. 

그것으로 헬리오폴리스의 불길한 고요가 그의 헬멧 안까지 채우기 시작했다.

이제 길리먼은 마지막 하나 남은 계단까지 내려오며 가운데의 원형 무대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마지막 수 번의 발걸음 소리가 어둠과 고요에 잠긴 극장에 메아리쳤다.

이 곳에서 빛은 완전히 불확실했는데, 무언가 불확실한 왜곡 현상 때문에 길리먼은 헬리오폴리스의 반대편을 확실히 확인할 수 없었다.

사실상 여기서 그는 위험에 노출된 상태였다.

이 곳은 타락한 형제가 자신과 길리먼과의 마지막 결투를 위해 준비한 무대였다.

펄그림 자신의 옛 잃어버린 영광들을 기리는 이 버려진 장소가 그가 선택한 무대인 것이다.


'펄그림! 내가 여기 왔다. 펄그림! 그대의 형제, 나 로버트 길리먼이, 여기 헬리오폴리스에 다시 왔다.

어찌하여 나를 맞이하지 않는 것이더냐?'


길리먼의 음성은 음성망을 통해 더욱 확대되어 헬리오폴리스 전체에 메아리쳤다.

그런데 소름끼치게도, 그 메아리들은 점점 이상하게 슬픈 음색으로 변질되더니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마치 비꼬는 음성처럼 들리고 있었다.

그것에 길리먼은 실망했다.


'한때 나의 형제였던 자여, 네놈의 같잖은 요술 짓거리로는 나를 화나게 만들지 못한다!

어서 나와 나와 마주하거라,  그럴 용기가 있다면 어서 썩 나와라!

아니면, 네놈이 타락한 수준만큼이나 이제는 겁쟁이가 되어버린 것이더냐?'


그러자, 어둠 속에서 무언가 금속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무언가 비늘진 피부가 돌바닥을 긁는 듯한 소음이 어둠에 잠긴 길리먼 반대편의 관중석들 위쪽에서부터 들려왔다.

길리먼은 소리가 나는 방향을 집중해서 바라보았으나,

그의 앞에서 비추는 조명 때문에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고,

덕분에 지금 그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곤 원형 무대 위 뿐이였다.


'네가 오는 것이 들린다, 펄그림!' 그가 포효했다. '어서 썩 빛 위로 나오거라!'


이번에는, 마침내 펄그림이 답했다. 그의 음성은 그 옛날과 다름없이 그야말로 감미로웠으나,

언제나 그리했듯 그가 내뱉는 말 뒤편으로 '결핍'이 뒤따랐다.

마치 구밀복검한 악의어린 의도처럼.


'어째서 그리도 서두르는 것일려나?' 그가 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헬리오폴리스 전체를 휘감았다.


'네 전술은 시간이 참으로 중요하니까, 그렇지?

알록달록 이쁜 색깔들로 새롭게 칠해진 네 자식들이 이 함선을 침몰시킬 시간을 벌어줘야 하니까. 그렇지 않나?

아아, 그들은 참으로 알록달록 이쁘더군, 길리먼아.

원래의 청색 ,청색, 청색보다 훨씬 보기 좋잖은가?

그것 때문에 네 군단을 부셔놓은 것이더냐, 길리먼?

아, 혹시 이 질문은 언짢을려나?'


'어서 썩 나와서 내 앞으로 나오거라. 나와 네놈이 가진 의견차들에 대해서 명예롭게 결착짓자.'


'대화라도 나누자는 것이더냐?' 펄그림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어둠 속에서 그는 분명한 조롱의 웃음소리를 피워내고 있었다.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눌까?

아, 형제들간의 재결합?

하지만 너와 나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지.

우리는 그런 적도 없었지만, 이제는 훨씬 더 그렇지 않아.

네가 우리들의 죽어 썩어가는 아버지의 손 아래 놀려지며 쇠약해져가는 동안,

이 몸께서는 이 우주를 관장하는 진정한 힘들을 섬기고 있단다.

너는 너무 뻔해서 재미없어, 로버트.'


펄그림이 소름끼치는 웃음을 토해냈다.


'너무나도 둔해, 너무나도 무감각해.

지루한 우리의 옛 친구 로버트라니!

너는 사랑 받아본 적 없는 아이에 불과해,

다른 아이들은 제 아비의 모든 시선들을 한몸에 받았는데 말이야.

우리의 길리먼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소외받았지만,

정작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자 그 자리에는 없었다지?

오 형제여, 좀 상처받았을려나?

하지만 빛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법이라네.

예전에, 페투라보는 이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대는 어떨려나?'


ps. 뜬금없게 페투라보는 왜 언급한걸까요?

어쨌거나 이제서야 등장하는 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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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ark Imperium


프라이마크의 죽음.

1만년 전.


2장 : 황제의 자존심 호

텔레포트 간에는 항상 찰나이지만, 무언가 깨달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있었다.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그런 어중간한 상태에서 명상을 하게 되는 그런 찰나의 순간.

그 순간들 속에서, 즉 자신의 영혼이 두 세계들에 걸쳐 있는 그 순간에는

길리먼은 자신이 진정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었다.

단지 물질적인 존재가 아닌, 양 차원의 존재임을.

물론 그 찰나의 순간이 끝나고 텔레포트가 완료되어 목적지에 모습을 드러내면 그 감각들은 희미해지고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망상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마치 자신의 본성에 대해 조금만 더 깊게 알고자 하는 용기만 있다면 자신의 창조와 관련된 모든 비밀들에 대한 이해가 눈 앞에 펼쳐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는 그럴 용기가 있었지만, 그 느낌에 현혹되지는 않는다.

타락과 저주는 언제나 그런 욕망 아래 깔려 있었기에.


그렇게 유혹의 순간은 끝났다. 명상의 감각도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찬란한 광휘의 빛이 무지의 공간에서부터 길리먼과 그의 전사들을 끌어내어 현실로 다시 올려놓는다.

빛은 점차 사라지며, 빛 속에 반쯤 시야가 가려졌었던 길리먼과 그의 전사들을 기습의 위험에 노출시킨다.

길리먼은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쏟아질지 모르는 기습에 대비했지만,

그러나 아무런 공격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워프 에너지의 남은 찌꺼기 빛들만이 돌아다닐 뿐이였고,

그나마도 곧 사라지자 이제 함내 침투 부대 주변으로 남은 것이라곤 오직 어둠 뿐이였다.


펄그림의 기함 내부는 행성 지표면의 밤보다도 더 어두운 환경이였다.

허나 길리먼의 헬멧에 내장된 여러 시스템들과 그의 초인적인 두 눈은 우주선의 내부 구조를 입자 단위로 확인하고 있었다.

펄그림의 함내에 펼쳐진 광경 덕분에, 길리먼은 한 1초 동안 자신이 텔레포트에서 실패해서 엠피리온 차원에 던져진건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주변에는 마치 어떤 창의적인 악몽에서 도용한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길리먼은 문득 헤러시 당시를 떠올렸다.

헤러시의 종결 직후 백여년간, 길리먼은 악마들과 본격적으로 싸운 적이 몇 번 있었다.

당시 그는 카오스의 사악한 손길에 의해 변이된 행성들의 표면 위를 직접 걸었으며,

그 곳들에서 소서러들에 의해 만들어진 고깃덩어리의 창문들을 통해 악이 가득한 끝없는 심연의 차원들을 직접 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황제의 자존심 호의 내부도 그와 제법 비슷했다.


의도했던 대로, 길리먼과 그가 직접 지휘하는 함내 침투 부대는 승리의 길(Triumphal Way) 지점에 전송되었다.

이 지점은 황제의 자존심 호를 가로지르는 긴 대복도였는데,

한때 각 군단들에서 찾아온 대규모 챕터 병력들이 이 복도를 거닐면서 펄그림이 거둔 제국의 승리들을 축하하는 행군식을 벌였던 적도 있었지만

그 시절들은 이미 오래 전 끝나버렸고 

이제 이 버려진 복도는 그저 텅 비어 있었다.

다만 그 위에서 울트라마의 전사들만이 마치 청색의 섬마냥 홀로 남겨져 있을 뿐이였다.

길리먼의 인빅타루스 스제리안 전사들이 주변 환경들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장인이 빚은 호위용 방패들과 레가틴 파워 엑스 도끼들로 무장하며 아직까지는 오지 않은 미연의 기습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으나,

일부 전사들이 손에 쥔 아스펙스 검출기들은 윙윙거리는 소리 끝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명쾌한 종소리로 알려주었다.

마린들의 슈트에 장착된 램프들이 작동하며 빛의 웅덩이들을 바닥들에 만들어내었고,

빛은 그야말로 끔찍하게 변해버린 전경을 가감없이 드러내었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티엘이였다.


'승리의 길,' 그가 이어서 말했다. '완전히 변했군요.'


'백여년간의 세월이라면, 악에게는 이렇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지,' 길리먼이 답했다. 


'엠퍼러스 칠드런 군단은 여기까지 타락해버렸군요,' 안드로스가 탄식했다.


길리먼의 '이성의 갑주' 안에 내장된 연산기 시스템들은 길리먼의 관심사들과 위험 요소를 자동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었다.

이를 통해 그는 중요 사항들을 모두 피상적으로 검사하고 있었다.

프라이마크의 유전학적으로 설계된 두뇌는 그야말로 막대한 양의 정보들을 분석할 수 있었는데,

사실 그 분석력이야말로 언제나 길리먼의 특출난 재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바깥의 함대들이 서로간에 교환하는 전투 음성들을 분석하면서 휘하 침투 분대원들에게 조용히 명령들을 하달하며 그들을 산개시키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함내 다른 지역들에서 활동 중인 공습 부대들에게서 오는 확인 신호들을 분석하면서,

똑같은 집중력으로 현재 위치하고 있는 거대 복도의 형태를 분석하고 헬멧 내부의 디스플레이 판으로 출력되는 다중 데이터크리드 검측값들을 읽어나갔다.

곧 그는 분석 결과에 입각해서 일련의 행동 계획들을 입안하여, 그것들을 음성망 및 데이터 전송을 통해 전사들에게 간단명료히 하달하였으나

사실 그러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이 함선 그 자체였다.


승리의 길은 그야말로 목불식견으로 변이되어 있었다.

한때 웅장함이 가득했던 이 곳에 지금 남은 것은 어둠 뿐이였다.

울트라마린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빛은 순식간에 삼켜져서, 흐릿한 은색으로만 보일 뿐이였으며

그렇기에 조명을 비추어봐도 보이는 것은 불확실하게 보이는 흐릿한 부언가들 뿐으로

거리 감각 또한 정확히 판단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가장 어두운 지점들은 말 그대로 그림자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프라이마크는 자신이 알았었던 승리의 길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한때 이 곳에는 가장 뛰어난 인류의 예술 작품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이 넒다란 복도에는 황동으로 만들어진 영웅 동상들이 세워져 있었으며,

28th 원정단 함대의 예술가들이 그린 걸작들이 그 사이 사이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대신으로 끔찍한 흉물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인간 본질을 그야말로 충격적으로 왜곡하여 만들어낸 조각상들과 함께 신성 모독과 외설을 예술로 표현하겠다는 의지 가득한 그림 작품들이 가득 걸려 있었는데,

특히 후자의 경우 알 수 없는 역겨운 안료들을 사용하여 만든 도료들로 칠해져,

두꺼운 곰팡이 깔개 위에 솟아난듯이 고정되어 있었다.

이 새로운 장식품들을 어떻게 세심하게 정리하겠다든가, 혹은 이전 것들을 치우겠다든가 했던 시도 같은 것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옛 장식품들이였던 것으로 보이는 폐품들이 마치 찌꺼기마냥 아무데나 수북히 쌓여져 있었으며,

부셔진 황동상 조각들은 바닥에 널부러진채로 알 수 없는 고기 오물들과 뒤엉켜 있었다.

대리석 벽들에는 기이한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어서, 그 안과 거대한 균열들 사이로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끈적끈적하게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새까만 기둥들은 바닥에서부터 뒤틀려 뽑여져서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그 기둥들은 과거 승리들을 새기는 용도였던 기둥들이였는데

기둥에 적혀 있었어야 할 승리 기록들조차 이제는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문자 범벅들로 변질되어 있었다.

포장 도로는 사방에서 쪼개지고 무너져 있었는데, 심지어 금속 갑판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오직 검기 그지없는 으스스한 구덩이들만이 보였다.


사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침묵'이였다.

진짜 말 그대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이할 정도로 침묵만이 맴돌고 있었다.

함선 외부에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고, 함선 또한 지금 무시무시한 중화력 포격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작동하는 기계들의 포효성들과 폭발음들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었던 '힘의 철권'호와는 다르게,

'황제의 자존심'호는 마치 시간에서 시간 별로 나뉘기라도 한 마냥 고요했다.

복도의 천장 부분의 높은 아마글래스 창문들에서조차 아무런 빛도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냥 말 그대로 어둠과 고요 뿐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디선가 불협화음적인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른 방향에서 3여개 정도의 비명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는데, 그 소리들은 위협적일 정도로 가까이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길리먼은 카오스의 주구들이 만들어낸 이보다도 더 노골적인 공포들을 본 적 있었으며, 

그것들 중 일부는 그야말로 대경실색할 규모였지만

이 승리의 길에 있는 것은 그야말로 임박한 파멸로서 이전의 가장 무시무시한 광경들조차 압도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에

길리먼조차 마음이 심란해질 지경이였다.


'긴장을 늦추지 말거라,' 그가 말했다.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 황제의 자존심 호는 이제 더 이상 현실 우주에 머무르고 있지 않으니.'


'맞습니다,' 티엘이 이어서 말했다. '이 장소는 워프의 악취가 풍기는군요.'



Posted by 스틸리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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